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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실로 미셸 오바마 니트코트 짰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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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올 1월 20일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일본 북서부 야마가타(山形)현 사가에(寒河江)시의 중소기업 사토(佐藤)섬유에 한 통의 e-메일이 날아왔다. 발신자는 프랑스의 유명 패션업체 ‘니나리치’. “미국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대통령 취임식 때 귀사의 실로 짠 니트코트를 입었습니다.”

미셸 오바마가 취임식장에 입고 나온 연둣빛 노란색 코트는 쿠바 출신 디자이너 이자벨 톨레도가 만든 니나리찌 제품이었다. 대대로 퍼스트레이디가 입었던 모직코트 대신 미셸은 니트코트를 택했으며, 이 옷은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을 최대한 강조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메일을 받은 이 회사의 사토 마사키(佐藤正樹·43·사진) 사장은 샘플실로 달려가 미셸 오바마가 입었던 코트의 원자재인 극세(極細) 모헤아 실타래를 찾아냈다. 이 실은 남아프리카산 앙골라 양모 1g을 44m까지 늘린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드럽고 가는 실’로 통한다.

사토 사장은 야마가타에서 4대째 실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쿄 분카(文化)복장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고향에 돌아와 가업을 이었다. 하지만 저가 중국산에 밀려 일본 시장에서 자국산 실의 시장점유율은 0.5%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실을 만들어도 판로가 별로 없자 디자이너인 아내와 니트 실로 직접 스웨터를 짜서 트럭에 싣고 주말마다 야마가타 일대에 다니며 팔아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의 미셸 오바마.

그가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것은 97년 이탈리아의 실 공장들을 돌아보면서다. “우리가 생산하는 건 단순한 실이 아니다. 패션의 기초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현지 직원들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 “100년 걸려도 아시아는 유럽 방직시장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당시 유럽업자들의 통념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사토는 “비싸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로 신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과거에는 일본산 양모을 주로 이용했으나 원료도 아예 바꾸었다. 아프리카와 남미·아시아 등 전세계를 누비며 최상급 원료를 구했다. 다양한 재질의 실을 생산하기 위해 실을 뽑는 기계도 직원들과 힘을 모아 직접 개발했다.

그런 노력 끝에 그는 남아프리카산 앙골라 양모 1g으로는 모헤아실을 30m까지 짜는 게 한계라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더 가늘고 길게 실을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 시장에는 44m로 늘린 것을 내놓고 있지만 최대 52m까지 가능하다. 30가지 색이 섞인 실, 울로 일본 전통종이인 와지를 감싼 실 등 독창적인 실도 잇달아 개발했다.

그는 2년 전 이들 실을 들고 이탈리아의 니트실 전시장을 찾았다. 제품이 출품되자 니나리치와 샤넬·이브생 로랑 등 패션업체들이 높은 평가를 하며 곧바로 납품계약을 맺었다. 그는 지금도 매년 10여 가지의 새로운 종류의 실을 개발하는 한편, 자신과 아내 이름의 니트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한국·태국·미국 등 세계 10여 개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해외시장을 개척하면서 95명이던 직원수는 두 배로 늘었다.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의 젊은이들이 이 회사에 입사하겠다며 야마가타로 몰려들고 있다. 미셸 오바마의 취임식 의상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사토섬유가 만든 자사 브랜드 니트도 케이블 TV홈쇼핑과 인터넷 통신판매 등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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