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총선앞두고 텅 빈 공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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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15일 각 공연기획사 사무실에 예술의전당 공연운영팀장 명의로 된 팩스가 도착했다.

"최근 음악당 대관과 관련해 공연일에 임박해 대관을 취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공연장은 물론 다른 기획사에 피해를 주고 있다" 며 "공연취소 건수가 많은 기획사에는 다음해 대관신청에서 불이익을 주겠다" 는 내용이다.

평균 3대1이 넘는 높은 대관 경쟁률로 정기대관이나 수시대관으로 공연일정을 꽉 채워오던 예술의전당으로서는 이례적인 조치다. 최근 영산아트홀.LG아트센터 등 1천석 내외의 공연장이 들어선 탓도 있지만 4.13 총선 여파가 장기화돼 취소사태가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

지난 12일엔 콘서트홀.리사이틀홀이 모두 텅 비어 있었다. 4월에 교향악축제가 열리지만 주말인 9일과 총선 당일인 13일엔 아예 공연이 없다.

총선을 앞둔 이달엔 대관신청이 워낙 저조해 콘서트홀의 경우 대관은 60% 정도에 그쳤고 리사이틀홀도 8회나 공연이 비어 있다. 취소건수도 3건이나 된다.

공연기획사 미추홀 대표 전경화씨는 "적지않은 계약금을 손해보면서까지 공연을 취소하는 것은 총선 직전에는 흥행에 실패하기 쉽다는 판단 때문" 이라며 "3월 공연도 외국 아티스트 내한공연처럼 매표수입 의존도가 높은 공연은 8건에 불과했고 자체 예산으로 꾸려가는 정기연주회나 초대권이 많이 뿌려지는 공연이 대부분" 이라고 설명했다.

기대를 모았던 가브릴로프.파후드.드미트리.한동일 등의 내한연주회도 2천6백8석 중 평균 유료관객은 25%에 못미칠 정도로 흥행실적이 저조했다. 돈이 선거판으로 몰리는 데다 인쇄소에서 전단 찍기도 힘든 실정이다.

정기연주회 입장권을 무료로 배부해온 지방 시립교향악단들도 총선을 앞두고 정기연주회를 모두 취소했다.

지방자치단체 주최의 무료 공연이 단체장 소속의 정당에 대한 선거운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이래 저래 총선을 앞둔 요즘 공연장은 썰렁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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