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컬처코드 (32) 멀티 앵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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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뮤직비디오 ‘두근두근 투모로우’의 한 장면. 인터넷으로만 공개됐다. 메인 화면 아래 작은 화면을 누르면 서로 다른 버전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쌍방향 멀티 앵글 서비스’다. [삼성전자 제공]

#21일 열린 ‘엠넷 아시아 뮤직 어워드(Mnet Asian Music Awards·이하 MAMA)’. 지난 10년간 국내 중심의 시상식을 폐지하고 범아시아 대상으로 규모를 확대한 첫 무대였다. 아시아 10여 개국에 동시 생중계돼 글로벌한 외양을 갖췄다. 그러나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 SM엔터테인먼트가 불참하면서 예고된 일이었다. 불참하는 쪽을 원천 배제하다 보니 올해의 주요한 노래, 가수가 빠졌고 나머지 특정 기획사에 상이 몰렸다.

#공정성 시비를 제외하고 나면 올 MAMA는 연출력 면에서 진일보했다. 특히 인터넷 생중계에서 선보인 ‘멀티 앵글 서비스’가 각광받았다. 멀티 앵글 서비스는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한 영상을 제공하면 시청자가 그 중 원하는 앵글을 선택해보는 서비스다. 방송용 화면을 포함해 총 카메라 5대의 영상이 제공됐다. 가수의 퍼포먼스를 다양한 각도에서 즐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만을 쫓는 식으로 시청이 이루어졌다.

엠넷닷컴은 국내 최초의 생중계 멀티 앵글 서비스로 동시 접속 1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인터넷 생중계 이후 최고 수치다. 멀티 앵글 서비스는 해외에서도 드물다. 대형 콘서트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컵 중계 등에서 프리미엄 가입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된 바 있다. 특정 선수의 동선을 쫓거나 경기장 일부를 집중 확대해 보여주는 식이다.

최근 국내에는 멀티 앵글 서비스 뮤직비디오도 선보였다. 삼성그룹 공익광고를 겸해 인터넷으로 공개된 ‘두근두근 투모로우’다. 승연(카라)· 가인(브라운아이드걸스) 등으로 구성된 걸그룹의 공연이다. 메인 화면 옆에 떠있는 멤버별 작은 영상을 클릭하면 메인 화면이 속속 바뀐다.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내용을 결정하는 ‘쌍방향 멀티 앵글 뮤직비디오’다.

#방송 쪽에서 멀티 앵글이란 말은 일본에서 먼저 썼다. 멤버들이 많은 아이돌 그룹의 팬서비스로 시작됐다. 공연 중계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멤버 별 전담 카메라 영상을 제각각 완성품으로 만든 것이다. 스마프 공연 중 기무라 다쿠야만 계속 찍으면 ‘기무다쿠 멀티 앵글’이다. 공연장에서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멤버만을 찍는 직캠, 팬캠(팬카메라)과 같은 개념이다.

국내에는 화면분할·동시화면 형태의 멀티 앵글도 시도됐다. MTV가 방송한 소녀시대의 ‘지(Gee)’ 멀티 앵글 방송은, 메인 화면으로는 팀 전체를 잡고, 작게 분할된 6~7개의 화면에는 각 멤버를 클로즈업한 장면을 동시에 내보내는 것이다. 한 영상 안에 가급적 많은 시각 정보(스타의 모습)를 담아내려는 욕구다.

#MAMA와 ‘두근두근 투모로우’ 뮤직비디오는 이를 넘어, 개인화·맞춤화된 방송(웹캐스팅)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는 그간 TV 연출자가 가졌던 전지적 시점, 지배자의 지위가 흔들린다. 연출자의 전지적 시점 대신 시청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여러 개의 카메라, 복수의 시선이 공존하는 것이다. PD 고유의 권한인 편집권은 시청자에게로 넘어간다. 시청자 모두가 PD가 되는 셈이다. 좀더 극대화시키면, 똑 같은 쇼를 보았지만 시청자 별로 각각 전혀 다른 쇼를 보는 상황도 가능하다.

이는 IPTV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IPTV VOD 서비스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편성권을 방송사가 아니라 시청자가 가진다는 점이다. 모두 디지털 인터넷 환경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변화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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