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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일본] 上.잇따르는 사건·사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이 기우뚱거린다. 핵시설에서 방사능이 누출돼 벌집 쑤셔놓은 듯 하더니 이번엔 지하철이 탈선을 했다.

의료사고도 잇따르고 사회와 담을 쌓은 젊은이의 흉악 범죄와 사교(邪敎)집단의 신비주의도 기승이다.

그러나 경찰의 신뢰는 내부 스캔들과 기강 해이로 땅에 떨어졌다. 전후 최악의 불황속에서 '사회 위기' 까지 맞고 있는 셈이다. 일본, 무엇이 문제일까. 두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어떻게 이런 사고가…. " 8일 출근길의 도쿄(東京)지하철 탈선 참사를 접한 일본 국민들은 나사 풀린 철도.운수 당국에 분노했다.

한 시민은 "교통의 생명선인 지하철에서 어떻게 추돌도 아닌 탈선이 일어날 수 있느냐 "고 했다.

내각과 운수성은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긴급 안전점검에 나섰지만 여론의 된서리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신칸센(新幹線) 터널 내의 콘크리트 추락사고로 한바탕 난리를 친 지 1년도 안돼 지하철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기반시설 사고는 이번만이 아니다.지난해 도카이무라(東海村)에서 일어난 핵가공시설 방사능 누출 사고의 후유증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쓰루가(敦賀).다카하마(高濱)원전에서는 냉각수가 새어 나왔다. 한 신문은 '있어서는 안될 집의 기둥이 뒤흔들렸다' 고 표현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던 일본에서 전례없는 일이다.

의료계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7일에는 교토(京都)대 병원에 입원 중인 여자 환자(17)가 애꿎게 목숨을 잃었다. 간호사가 인공호흡기에 증류수가 아닌 소독용 에탄올을 넣은 결과였다.

병원측은 이틀 동안 이 사실조차 몰랐다고 신문들은 전했다. 지난해는 요코하마(橫濱)병원에서 심장병 환자와 폐병 환자를 뒤바꿔 수술했고, 마쓰에(松江)적십자병원은 엉뚱한 혈액형의 피를 수혈해 환자를 중태에 빠뜨렸다.

흉악범죄도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난다. 최근의 초등학생 납치.감금과 교정내 초등학생 살인은 일본인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납치.감금 사건의 범인은 무직 남성(37).1990년 니가타(新潟)현 산조(三條)시에서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현재 19세)을 납치해 인근 집으로 끌고와 9년 동안 방안에 가둬놓았다. 소녀의 생활은 말이 감금이지 '사육' 이었다.

사건은 아들의 폭력에 못이긴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하소연하면서 막을 내렸다. 20대 남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교토의 교정에서 뛰놀던 초등학교 2학년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기도 했다.

범인은 경찰이 임의동행을 요구하자 달아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1월엔 주부가 이웃에 사는 여자 유치원생(2)을 살해해 충격파를 던졌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형사범은 98년 전후 처음으로 2백만건을 돌파한 뒤 증가곡선을 그리고 있다. 바깥세계와 담을 쌓은 젊은층 인구가 1백만명이나 된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해괴한 사건도 줄을 잇는다. '머리를 때려 기(氣)를 심는다' 는 치료를 하면서 돈을 챙겨온 단체의 설립자가 최근 경찰에 구속됐다.

한 종교법인은 발바닥으로 건강상태와 운세를 판단하는 '발바닥 진단' 을 한다고 신도를 모아 거액을 챙겼다. 피해자는 모두 1천1백명으로 피해 액수도 52억엔에 이른다.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도 적지 않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다. 꽉 짜인 일본 사회체제에 피로가 몰려왔다는 의견이 있다. 또 방향감각을 잃고 엉뚱한 데로 튀는 일본인의 심리나 장기 불황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요즘의 일본은 예전의 일본이 아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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