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휴대폰과 범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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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같은 날짜 신문에 일본에 관한 기사 두건이 실렸다. 하나는 도쿄(東京)에서 3월부터 도(都)가 운영하는 지하철.버스 안에서 휴대폰 사용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항구도시 나고야(名古屋)의 하천을 5m짜리 범고래(killer whale)가 거슬러 올라오는 사진과 함께 나고야시 당국이 "우리 하천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보여주는 쾌거" 라고 즐거워하면서도 어떻게 이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낼지 고심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신문에는 우리 나라의 휴대폰사고 기사도 실렸다. 트럭운전사가 갑자기 걸려온 휴대폰을 받느라 정신이 팔려 차량을 계속 후진하는 바람에 트럭 위에서 일하던 다른 작업 인부가 콘크리트 구조물과 트럭적재함 앞면 사이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었다.

휴대폰 사용을 어떤 경우에 규제할 것인가는 정부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운전 중의 휴대폰 사용 규제에 대해서는 상당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까지 사용을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반응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지기(知己)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A는 "안되지, 특히 젊은 계층들은 펄쩍 뛰겠지. 얼마전 버스 안에서 어느 노교수가 큰 소리로 통화하던 여학생을 나무라다 시비가 붙고 결국 두 사람 모두 입건된 일이 있었지. 절대 안될거야. "

B는 "아, 그거 방법이 있지. 지하철의 경우 휴대폰 규제를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타는 차량을 구분해 놓으면 될 거 아냐. " 그러자 C가 "야, 그게 대표적인 탁상행정이지, 출.퇴근 시간 같은 경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 해서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하철의 경우 백보를 양보해 우리끼리만 산다면 "글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식을 하면서 국 한 그릇에 여럿이서 숟가락을 넣어서 퍼먹기도 하고 어느 모임에서는 서로 방귀를 뀌어도 용인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서로서로 용납하는 인정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장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사용한다고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불편한 것을 참아가며 문명의 이기를 애용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하는데 무엇이 잘못됐다는 말인가.

이러한 강변은 우리끼리만 산다면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빠른 속도로 세상은 국제화돼 가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을 '불편하더라도 참고 살자' 고 우리끼리는 암묵적으로 양해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외국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라면 곤란하다. 외국인은 우리에게 객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끼리도 남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문화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

앞에서 얘기한 일본의 또다른 기사에서 범고래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도 한강에서 범고래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속에서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설렘이었다.

그리고 3년 전 교토(京都)에 갔을 때 시냇물 흐르는 개천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감탄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청계천(淸溪川)을 우리 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발견하고서 말이다.

깨끗하고 맑은 환경도 정부가 열심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만들어가야 하겠지만 그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각자가 환경을 오염시켰을 때 남에게, 그리고 사회에 끼치는 불편과 해독을 생각하는 일이다.

휴대폰과 범고래의 관계는 범상한 것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 사용을 자제할 수 있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한강에서 범고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계식<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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