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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사민당 이토 부총재 "병든 아내 지키려 정계은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일본 사민당의 이토 시게루(伊藤茂.72)부총재가 전신불수의 부인 곁을 지키기 위해 정계를 떠난다.

당내 최고의 정책통이며 차기 당수 후보로 꼽혀온 이토는 주간 아사히(朝日)와의 회견에서 8년간에 걸친 간병을 소개하고 정계은퇴 의사를 밝혔다.

"국정은 젊은 세대에게 맡길 수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는 게 은퇴의 변이다.

부인 레이코(玲子.67)가 쓰러진 것은 1992년. 뇌지주막하출혈로 의식을 잃고 온몸이 마비됐다.

입원 직후 세번의 대수술로 가까스로 위기는 넘겼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이라곤 눈과 귀, 장기의 근육뿐이다.

회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토는 부인이 쓰러지자 매일 두차례 병실을 찾았고, 요즘엔 주3~4회 병원에 들르고 있다.

"의사는 '좌뇌장애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고 하지만 아내의 손을 잡고 이마를 쓰다듬으면 예전의 눈빛으로 돌아온다" 고 그는 말했다.

부인의 머리를 정리해주고 손톱을 깎아주는 것도 그의 일이다.

때로는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고 음악도 들려준다.

이토는 간병과 의정활동에다 당 행사로 피로가 쌓이면서 97년엔 자신이 쓰러져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 무렵 국정을 맡은 책임과 남편.인간으로의 삶에 대한 갈등이 싹텄고, 지난해말 처음으로 후원회 멤버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당은 정계은퇴를 극구 말리지만 결심은 확고하다.

도쿄(東京)대 경제학부 출신의 이토는 반핵운동과 오키나와(沖繩)일본 반환운동을 주도한 사민당내 최고 이론가.

76년 중의원 의원에 첫 당선된 이래 8선으로 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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