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 열풍] 中. '무작정 출국' 곳곳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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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기유학의 문호는 열렸지만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학비가 비싼 미국을 피해 캐나다.호주.뉴질랜드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학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사기당하는가 하면 광고와 다른 현지 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마음의 준비 없이 환상을 품고 떠났다가 탈선.유혹의 덫에 걸려 귀중한 청소년기를 허송하는 사례도 많다.

◇ 유학원 사기〓지난해 9월 고교 1학년을 다니다 호주에 유학간 金모(16)양 등 10여명은 현지 C.H유학원을 통해 S칼리지에 학비를 내는 과정에서 사기당했다. 유학원 직원이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고 잠적한 것이다.

사기당한 돈은 개인당 5천~1만 호주달러(약 3백30만~6백60만원)에 이른다. 학생들이 직접 칼리지에 돈을 내는 것보다 유학원을 통하면 최고 20%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유학원측이 악용한 것이다.

M유학원의 한 관계자는 "호주쪽으로 유학생이 몰리면서 시드니 현지엔 1백여개가 넘는 유학원들이 난립해 덤핑 경쟁을 벌이다 학비를 갈취하고 도주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고 말했다.

국내 한 어학원의 소개로 지난해 1월 뉴질랜드 N칼리지 어학연수 과정에 들어간 金모(17)군은 당초 약속(3개월)과 달리 어학과정을 1년 이상 하고 있다. 金군은 "현지 유학원측이 고교 편입을 질질 끌며 돈만 요구한다" 고 불만을 털어놨다.

◇ 열악한 교육환경〓서울 S고교 1학년에 재학중이던 尹모(16)군은 지난해말 S유학원 소개로 캐나다 토론토 P칼리지 어학연수 코스에 입학하기 위해 출국했다. S유학원 팸플릿에는 "칼리지 소속 랭귀지 스쿨에서 연수한 뒤 곧바로 공립고교 입학이 가능하고, 첨단 교육시설에 기숙사를 제공한다" 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尹군은 "2층짜리 건물에 교실만 서너개 있는데 도무지 칼리지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고 했다. 게다가 한반 인원이 20여명이나 되는데다 60%가 한국 학생이었다. 한달 학비가 1천1백 캐나다달러(약 86만원)에 불과해 저렴하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왔던 그는 한달 만에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미국 코네티컷주 시골 마을에 있는 한 칼리지 어학코스에는 한국 학생이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고교 1학년 재학중 유학을 떠나려다 학생비자가 안나와 어학연수차 온 M군은 "어학원의 광고와 달리 이 시골 학교에 한국인이 절반이고 동남아.라틴계 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며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느니만 못하다" 고 말했다.

◇ 탈선.유혹〓호주에서 호텔경영학 관련 칼리지를 다니다 올초 입국한 金모(23.여)씨는 "조기유학한 고교생들은 입시위주 교육에서 갑자기 풀린 데다 향수병까지 겹치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술.담배고, 공부는 뒷전" 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지인과 동거하는 여학생들도 많이 봤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고 전했다.

최근 미국 LA지역 한 고교에서 마리화나 등 마약을 사고 판 한인 학생 20여명이 학교측에 적발됐다. 이 학교에는 조기유학을 온 학생들이 상당수 재학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학부모들이 학교측에 문의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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