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디자인센터에서 회의하는 모습.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선보인 이색 제품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가전 제품군을 자랑하는 회사답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자제품은 거의 다 갖췄다고 보면 된다. ▶다리미·청소기 같은 생활가전 ▶커피메이커 등 주방가전 ▶면도기·제모기 등의 개인가전 ▶전동칫솔류와 음향·영상기기, 유축기 같은 영아·유아용품 ▶웹켐·USB·이어폰 등의 PC 주변기기 등이다. 이 다양성의 원천은 나라별 디자인 센터다. 35개국 출신의 450여 디자이너가 일한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 아시아(홍콩·싱가포르·인도) 등지의 12개 지역에 분포돼 있다.
필립스 본사 트렌드&스트래티지 담당인 조세핀 그린 시니어디렉터는 “여러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필립스 디자인센터에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다각도에서 제품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치열한 경쟁이다. 한 제품을 개발하기에 앞서 디자인 팀들은 머리를 맞댄다. 회의를 거쳐 대개 둘 이상의 프로젝트 팀이 발족된다. 각 팀마다 소비자 조사를 해 디자인 시안을 제출한다. 최종 안이 결정되면 이를 주도한 팀이 프로젝트 전담 팀을 맡는다. 한팀을 이루는 디자이너들은 색상과 소재 등 그들만의 전문 영역이 있다.
5년의 산고 끝에 탄생한 필립스 ‘아키텍’ 면도기.td>
가령 2001년부터 시작된 전기 면도기 프로젝트는 5년이 걸렸다. 세계 30대 이상 남성을 상대로 ‘진정으로 원하는 면도기가 무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길었다. 남성 면도기의 가장 큰 숙제는 얼굴과 턱·목 등 굴곡이 심한 부분까지 깔끔하게 면도할 수 있는 설계다. 각국의 필립스 디자인 팀이 모여 경쟁을 통해 프로젝트를 추진할 팀을 셋 뽑았다. 치열한 경합을 거쳐 세 가지 디자인으로 집약됐다. 각국 판매 담당들의 투표를 통해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런 산고 끝에 탄생한 제품이 ‘아키텍’이다. 헤드 부분을 날렵하게 디자인해 360도 입체 면도가 가능하다. 기대한 대로 아키텍은 출시 후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30만원대 이상의 프리미엄 전기면도기 시장을 창출했다.
심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