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개국 450명 모인 필립스 디자인센터, 세상의 아이디어가 모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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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필립스 디자인센터에서 회의하는 모습.

깎인 수염이 날리지 않아 우주선에서 쓸 수 있는 면도기,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 회사 알레시와 손잡고 흑백 일색이던 것에 알록달록한 색상을 가미한 주방가전, 공기방울로 양치질을 해 주는 칫솔….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선보인 이색 제품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가전 제품군을 자랑하는 회사답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자제품은 거의 다 갖췄다고 보면 된다. ▶다리미·청소기 같은 생활가전 ▶커피메이커 등 주방가전 ▶면도기·제모기 등의 개인가전 ▶전동칫솔류와 음향·영상기기, 유축기 같은 영아·유아용품 ▶웹켐·USB·이어폰 등의 PC 주변기기 등이다. 이 다양성의 원천은 나라별 디자인 센터다. 35개국 출신의 450여 디자이너가 일한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 아시아(홍콩·싱가포르·인도) 등지의 12개 지역에 분포돼 있다.

필립스 본사 트렌드&스트래티지 담당인 조세핀 그린 시니어디렉터는 “여러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필립스 디자인센터에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다각도에서 제품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치열한 경쟁이다. 한 제품을 개발하기에 앞서 디자인 팀들은 머리를 맞댄다. 회의를 거쳐 대개 둘 이상의 프로젝트 팀이 발족된다. 각 팀마다 소비자 조사를 해 디자인 시안을 제출한다. 최종 안이 결정되면 이를 주도한 팀이 프로젝트 전담 팀을 맡는다. 한팀을 이루는 디자이너들은 색상과 소재 등 그들만의 전문 영역이 있다.

5년의 산고 끝에 탄생한 필립스 ‘아키텍’ 면도기.td>

또 제품 특성에 따라 이를 진행하는 디자인센터가 달라진다. 가령 젊은 층을 겨냥한 제품은 유럽이나 미국의 연구소가 하고, 세부적으로 섬세함이 중요하면 아시아 지역에서 주도한다. 제품마다 반영할 문화와 풍토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2001년부터 시작된 전기 면도기 프로젝트는 5년이 걸렸다. 세계 30대 이상 남성을 상대로 ‘진정으로 원하는 면도기가 무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길었다. 남성 면도기의 가장 큰 숙제는 얼굴과 턱·목 등 굴곡이 심한 부분까지 깔끔하게 면도할 수 있는 설계다. 각국의 필립스 디자인 팀이 모여 경쟁을 통해 프로젝트를 추진할 팀을 셋 뽑았다. 치열한 경합을 거쳐 세 가지 디자인으로 집약됐다. 각국 판매 담당들의 투표를 통해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런 산고 끝에 탄생한 제품이 ‘아키텍’이다. 헤드 부분을 날렵하게 디자인해 360도 입체 면도가 가능하다. 기대한 대로 아키텍은 출시 후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30만원대 이상의 프리미엄 전기면도기 시장을 창출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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