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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밸리 다국적 軍들이 뛴다…"실력이 곧 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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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인터넷 시대의 기업은 국적이 없다. 한국 벤처도 예외는 아니다. 자본과 활동무대는 물론 내부 구성원도 다국적화한다.

한국벤처의 외국인들. 이들은 과거의 대기업 고문같은 '아웃사이더' 도, 다국적 기업을 등에 업은 '정복자' 도 아니다. 프로그래머.벤처투자가.전략기획가 등 하는 일도 다양하다.

이들에게 테헤란밸리는 실리콘밸리에 이어 또다른 기회의 터전이다. 이들은 "나의 실력을 알아주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세계 어느 곳이건 달려가 일을 할 것" 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최근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가능성이 한층 높다고 말한다. 기술보다는 콘텐츠 의존도가 높아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기술 지원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도 잊지 않는다.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세연테크의 이삼 알리(28)대리는 리비아인이다.

트리폴리의 알파다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친 후 한국에 와 아주대 전자공학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한국에 온지 8년. ' 전화 목소리만 들어서는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한국어에 능통하다.

"네트워크 분야인 전공을 살릴 수 있어 지금의 직장을 선택했다" 는' 그는 "기술개발 이후 상업화에 걸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짧아졌다" 며 그 역동성의 한가운데 자신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한다.

번역 서비스 업체인 '클릭큐' 의 다케이 히로키(竹井弘樹.33)컨설턴트. 일본에서 전문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리크루트사에서 일하다 92년 호기심 하나만 덜렁 안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29세에 한양대 경영학과 1학년부터 다시 시작, 지난해 12월 클릭큐에 입사했다. 일본어 사이트를 개편, 이 회사의 일본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세계화를 위해선 헤드쿼터격인 한국 본사에 외국인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클릭큐가 그를 채용한 이유다. 인터넷이 글로벌화해도 콘텐츠는 지역화.현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요즘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비자 문제. "아직 학생 비자로 일하고 있다. 취업비자를 신청해 놓은 상태인데 빨라야 4개월이 걸린다. 그나마 반려되는 경우가 많다" 고 말한다.

실력 하나만 믿고 낯선 타국땅을 찾은 러시아 프로그래머들도 있다. '스트림박스' 의 세르히 파블로프(27)는 미국을 잠깐 찾았다가 이 회사 현지법인 김지일 사장에게 스카우트돼 한국에 왔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개발한 멀티미디어 검색 솔루션의 혜택을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한다. "내 실력을 알아주는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을 택했다" 고 말한다.

국내 기술인력에 대해선 "한 사람이 맡은 분야가 너무 세분화돼 있어 문제" 라고 지적한다. 러시아에선 자신의 분야는 물론 인접 2~3개 분야에도 해박해 '개개인이 맡은 영역이 넓어' 국내보다 훨씬 적은 인력으로 업무수행이 가능하다는 것.

동료 프로그래머 이고르 호멘코(24)는 '펑크 록' 에 심취해 있는 음악광. 밤낮없이 회사에 매달려 있다가도 주말이면 신촌 홍대앞의 라이브클럽을 찾아 국내 펑크록 밴드들의 공연을 즐긴다. 러시아에서 펑크락을 크게 틀어놓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한껏 창의력을 발휘해 온 호멘코에게 한국의 낯선 문화가 주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에서 첨단을 달린다는 벤처기업들의 문화에도 아직 보수적인 부분이 많다" 고 말한다.

9년전 한국에 와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연구소 연구원에서 데이콤 직원으로, 다시 미국 자본으로 한국에 투자하는 최초의 벤처창업투자회사 경영자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전밀반(38.미국이름 존 밀번)사장. 데이콤에서 인터넷서비스 망관리와 인터넷데이터센터(KIDC)설립을 주도해 사내에선 '한국 인터넷 업계의 산증인' 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3월말 창립할 벤처 창투사 '보이저(Voyager)' 는 미국 기관투자가.실리콘밸리 사업가.한국기업 등으로부터 이미 1억2천만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1~2년 동안 가능성있는 국내 벤처기업 한곳당 5백만달러 정도를 투자한다는 계획. 최근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포들의 모국 벤처투자 움직임에 대해 "한국의 인터넷 산업을 전혀 모르면서 일확천금만 노리는 이들이 많다" '며 "이런 사람들이 운영하는 기업은 '쉿케이크(Shit Cake:겉만 그럴 듯하게 꾸며놓은 것)나 마찬가지" 라'고 매섭게 질타한다.

"실리콘밸리는 기술.마케팅.홍보.금융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초기단계부터 전문적으로 벤처를 키운다. 한국 벤처는 기술은 있지만 1~2명의 경영진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경우가 많다" 고 지적한다. 한국 벤처가 직원들에게 성과를 배분하는 것도 아직 실리콘밸리 벤처에 비해 소극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닷컴(. com)' 기업 중 상당수가 도태될 가능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인터넷 산업의 미래는 밝다" 며 "앞으로 5~10년동안 지속될 '신산업혁명' 에 도움을 줄 기업들을 키우는 게 목표" 라고 말한다.

글〓최지영.사진〓최승식.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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