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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PD가 개미탈 써보라는데 솔직히 그것까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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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코미디언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을 때도, 단역 배우였을 때도,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지금도, 늘 최선을 다하는 주연이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빛나는 연기를 보여줬지만 여전히 목마르다고 말한다.


까만 교복에 빨간 양말을 신고 다이아몬드 스텝을 신나게 밟던 그 시절이 첫 번째 전성기였다면, 지금은 두 번째.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1976년 극단 ‘가교’에서 연극을 시작하며 연기에 입문한 임하룡은 1981년 본격 코미디언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 20년 동안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영원한 젊은 오빠, 추억의 책가방의 빨간 양말, ‘쑥스럽구만’ ‘이 나이에 내가 하리’ 등 숱한 캐릭터와 유행어를 양산해 낸 그였기에 그 이름 앞에 최고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개그 프로그램 대신 정극 연기를 택했을 때만 해도 임하룡은 ‘연기를 하는 코미디언’이었지만, ‘묻지마 패밀리’를 시작으로 최근 화제 속에 개봉한 ‘굿모닝 프레지던트’까지 15편에 이르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는 동안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연기에 목마르다는 임하룡.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배우로서 성장해 가는 기분, 괜찮네”

그간 몇 차례 ‘주연’ 자리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지만, 최근 개봉작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그는 눈에 띈다. 대통령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대통령이 아닌 영부군 역할을 맡아 능청스런 연기를 펼치는 그. 대놓고 웃기지 않아도 잔잔한 웃음을 주는 그의 연기는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얼마 전 ‘굿모닝 프레지던트’ 공식 자리에서 ‘장동건과 쌍벽을 이루는 미남 배우’라고 했는데 진심이죠(웃음)?
에이, 진심이 아니니까 통하는 거죠. 내가 약간이라도 장동건처럼 생겼는데 그런 말을 했어봐, 욕먹지(웃음). 분위기가 딱딱해서 일부러 좀 그랬지. 나한테 재밌는 말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던데, 거기서도 분위기 메이커?
이순재 선생님이 진짜 달변에 재밌었죠. 나야 그 빈 구석을 메우는 정도였고. 모두들 소풍 온 기분으로 재밌게 촬영했어요. 사실 나는 고두심씨랑 찍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이순재 선생님, 장동건, 한채영이랑은 한 장면도 같이 안 찍었어요(웃음). 근데 오히려 그래서 더 친해진 것 같아. 카메라 밖에서 촬영 없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다 떨고 그랬거든.
현장 분위기가 좋으면 성적도 좋지 않아요?
글쎄, 다들 재밌어 하더라고. 따뜻한 영화니까. 근데 정말로 흥행 여부는 모르겠어. ‘웰컴투동막골’ 때도 우리는 한 300만 정도 기대했는데 800만이나 들었잖아요. 어떤 경우엔 진짜 잘될 것 같다고 기대했는데 안 될 때도 있고. 사실 작품이 잘되면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면이 서서 좋아요. 나를 보고 있는 후배들이 많은데, 우리 선배가 잘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 들게 해야지. 진짜 후배들을 많이 의식하게 돼요. 그러니까 감독들이 큰 역할 좀 주면 좋겠어. 허허.

명칭도 낯선 대한민국 최초의 영부군 역할을 맡았는데 어땠나요?
진짜 영부군이라면 그렇게 내조했다간 큰일 나죠. 근데 나라면 정말 갑갑해서 못 살 것 같아요. 촬영할 때 별로 힘든 건 없었어요. 고두심씨랑 왈츠 추는 장면 때문에 한 달 정도 연습했는데 춤이 어렵다기보다 내가 배가 많이 나와서 자세 잡기가 어렵더라고.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서 말이지(웃음).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잖아요. 느낌이 좀 달랐겠어요?
초대작 배우로 초청받았던 ‘웰컴 투 동막골’ 때부터 매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는데, 이번엔 더 성장해서 가는 거니까 기분이 괜찮았지. 개막작은 흥행 안 된다는 속설도 있다는데, 글쎄, 이번엔 깰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인사동 스캔들’ ‘내 사랑 내 곁에’ ‘굿모닝 프레지던트’까지 올해만 벌써 영화 3편에 출연했는데, 충무로에서 제일 바쁜 배우 아니에요?
올해가 좀 바쁘긴 했는데, 올해 빼곤 많지도 않았어요. 사실 나도 중간에 많이 쉬었고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사람들은 내가 항상 일도 많고 인기도 많았고 부를 많이 축적했다고 생각하더라고. 뭐, 궁상맞게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업종 변경? 포지션만 바꿨을 뿐이지”

코미디언 시절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만큼 그 자리를 버리고 단역 배우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기란 쉽지 않았을 터. 겁이 많아 놀이기구도 못 탄다는 그가 어쩌면 모험일 수도 있는 일을 감행했던 건 솔직히 설 땅이 없어서였노라고 고백한다.
장진 감독과 벌써 인연이 꽤 깊죠?
2000년인가, 장 감독이 대학로에서 연극 ‘밥통’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찾아간 게 첫 만남이었어요. 당시 방송 활동 접고 연극 제작을 해볼까 했는데 얘기해 보니 만만치가 않더라고. 그래서 영화든 연극이든 작은 배역이라도 있으면 해보자 하고 돌아왔지. 그 후 장 감독이 영화 ‘묻지마 패밀리’에 추천을 해줘서 ‘내 나이키’ 편에 류승범 아버지로 출연을 하게 됐어요. 그 후로도 ‘아는 여자’ ‘웰컴 투 동막골’ 등 장감독이 연출했거나 제작한 작품에 많이 출연했죠. 사석에서 나는 ‘진이’라고 부르고 장 감독은 ‘형님’이라고도 하죠. 딴 데 가서 형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웃음).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요. 운동도 같이 하고.


코미디언으로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는데, ‘업종 변경’한 이유가 뭔가요?
엄격히 말하면 전업이 아니지. 우리 때는 10분짜리 단막 희극을 했으니까 그것도 연기였죠. 야구로 말하면 포수를 하다가 타자를 하는 셈이라고 할까. 솔직히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았으면 연극이나 영화로 넘어오지 않았겠죠. 40~50대가 되니까 할 프로그램이 없더라고. ‘뽀뽀뽀’의 뽀미아빠까지는 했는데 바뀐 PD가 개미 탈을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애들을 위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것까진 못하겠더라고. ‘개그콘서트’ 초창기 때 봉숭아학당 선생님도 했는데, 젊은 후배들끼리 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나왔고.
진짜 인기가 대단했었는데, 다시 개그 무대에 복귀할 생각은 없나요?
어휴, 요즘 스타일의 개그는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아요. 수위도 높고 남의 사생활도 팍팍 캐내야 하고. 지금도 같이 방송하자는 사람들이 많은데 10년간 안 하다가 다시 하는 게 어디 쉽겠어요.
그러고 보니 영화한 지가 벌써 10년이나 됐네요. 코미디언으로 늘 주연만 하다가 단역부터 해야 하는 그 위치의 간극 때문에 힘들 때도 있었을 텐데요?
그것 때문에 많은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마음 비우기가 힘들었죠. 위치가 변하는 건 드라마나 영화로 시작한 배우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이순재 선생님을 봐도 주연을 하다가 나이 들어 조연이 되고, 또 이번 영화에서처럼 다시 주연도 맡고. 그런데 코미디언은 나이 들면 그냥 사라져버려요. 그것보다는 단역부터라도 시작하는 게 낫잖아요.
‘웰컴 투 동막골’로 2005년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도 받았잖아요. 이만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나요?
성공이라는 게 다 자기만족이지. 남우조연상 받았을 때도 나는 신인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신인의 입장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이죠. 그냥 이름을 알린 정도다,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일 욕심이 좀 많아요. 한때는 매일 하루도 안 쉬고 아침에 나가서 야간 업소 일까지 하고 새벽에 귀가했지. 40대 중반까지 열심히 일하고 50대에는 전원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그 나이 되니까 못 가겠더라고요.

“아버지만 생각하면 늘 울컥해”

야간 업소 DJ 시절 만나 결혼 후 온갖 고생을 견뎌준 아내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연기를 하겠다는 아들, 기대를 저버린 장남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된 몸으로 5남매를 억척스레 키워낸 어머니까지, 임하룡에게 가족은 눈물 나는 존재다.
원래 꿈은 코미디언이 아니었나요?
사실 코미디언을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오락반장, 응원단장 하면서 사회도 보고 좀 웃기긴 했지만. 사실 그때가 더 웃겼지(웃음). 출발은 연극으로 했어요. 그런데 집안 사정으로 밥벌이를 해야 해서 야간 업소 사회를 보기 시작했지. 그때 웃긴다고 소문이 좀 났어요. 1978년 라디오를 시작으로 81년 ‘유머1번지’의 전신인 ‘젊은이의 토요일’부터 ‘젊음의 행진’ ‘쇼 비디오쟈키’ 등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고현정씨랑 같이 쇼 프로그램 진행도 해봤고.
학창 시절에 꽤나 유명했겠어요?
부모님께 걱정 좀 끼쳤죠. 내가 5형제 중 장남이라 집에서 엄청나게 기대했거든.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서울 상대에 들어가길 바랐지만, 서울 상대에서 나를 상대 안 해줬지(웃음).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주 모범생이었는데,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 오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한 게 문제였어요. 제동을 거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말썽 많이 피웠어요. 공부도 안 하고, 성적은 최하였죠. 극장, 만화방 들락거리고, 춤추러 가고 그랬으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트위스트 출 때 ‘야, 이것도 써먹는구나’ 싶더라니까(웃음).

한때는 매일 하루도 안 쉬고 아침에 나가서 야간 업소 일까지 하고 새벽에 귀가했지. 40대 중반까지 열심히 일하고 50대에는 전원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그 나이 되니까 못 가겠더라고요

그 시절 서울로 유학을 올 정도면 굉장히 잘 살았나 봐요?
그냥 좀 괜찮았죠. 아버지가 농협 전무였거든. 그 후 한국마사회 총무를 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아마도 당신이랑 잘 안 맞는 직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거 같아. 그래서 나는 더더욱 철저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는 주의예요. 아버지 생각만 하면 지금도 울컥해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운 적도 있어요.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절은 언젠가요?

방송하기 전, 군대 제대하고 5~6년 정도 그랬어요. 그땐 정말 뭘 해도 안 되더라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가 가장이었는데 취직을 해도 이상한 데만 되고 연극도 잘 안 되고.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는데 걷잡을 수 없었지. 하루하루 봉지쌀 사들고 가던 시절이었어요. 그땐 10만~20만원 빌리는 일이 그렇게 힘들더라고. 이젠 남한테 그런 이야기 안 해서 좋아요.
이제 경제적으로는 제법 여유 있다는 뜻이죠?

코미디언 할 때보다는 수입이 못하죠. 그렇다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 것도 아니니까. 집사람은 내가 돈 못 벌면 나가서 노점상이라도 할 사람이거든(웃음).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는 아내 생일에 직접 미역국도 끓여주잖아요. 실제로는 어떤 남편인가요? 반반인 거 같아요. 외조를 잘 하는 편도 못 되지만 내조 받기만 바라지도 않지. 근데 부엌에 가서 일 도와주고 그런 건 해본 적이 없어요. 나는 가스 불 켜는 것도 겁나는 사람인데. 다행인 건 아내도 요리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밖에 나가 사 먹을 때가 많아(웃음).

두 분 나이 차이가 제법 있죠? 결혼한 지 30년 가까이 되도록 금실이 여전하다면서요?
아홉 살 차이예요. 지금 나이면 별로 큰 차이가 아닌데, 둘 다 20대 때 만났으니까, 그때 도둑놈 소리 좀 들었죠. 예전엔 정말 예뻤는데, 지금은 세월이…. 허허. 금실 안 좋으면 쫓겨나는데, 당연히 좋아야죠(웃음).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같이 여행을 가요. 전에는 해외여행을 많이 갔는데 요즘은 국내가 좋더라고. 내 고향이 충북 단양인데 얼마 전에도 제천영화제 가면서 들렀다 왔죠.

아드님과는 같은 대학, 같은 과 선후배죠? 연기를 대물림한다는 건 그만큼 연기자라는 직업이 좋다는 거겠죠?
그럼요. 연기자가 얼마나 좋은 직업인데. 다만 기다릴 줄 알아야 돼요. 아들한테도 기다리라고 해요. 우리 주변에 보면 마흔이 넘어 배우 된 사람도 있고, 심지어 예순이 다 되어 스타가 된 사람도 있잖아요. 아들이 얼마 전에 일식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그것도 다 연기를 위해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영원한 ‘젊은 오빠’잖아요. 소녀시대, 카라, 2NE1, 포미닛, 어디까지 알고 있어요(웃음)?
알긴 다 알아요. 좋아하고(웃음). 그런데 서태지, 박진영까지는 노래랑 춤까지 배웠는데 그 후로는 따라 하긴 힘들더라고.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브아걸의 가인이랑도 같이 촬영했는데, 예전 같았으면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이젠 그렇게 말하기도 미안한 나이가 됐네요(웃음).
혹시 성형 수술의 유혹을 받아본 적은 없어요(웃음)?
성형한다고 될 얼굴이면 진작 했게(웃음)?
‘무릎팍 도사’가 부르면 어떤 고민을 의뢰할 건가요(웃음)?
글쎄, 어떻게 하면 감독들이 나를 많은 작품에 써줄까? 허허.

취재_박진영 기자 사진_하지영(studio lamp) 헤어_김현숙(유미, 02-3448-8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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