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일보에 바란다] 독자위원들이 본 '제2창사' 1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독자 제일주의를 실천해온 중앙일보는 1999년 3월 ‘제2 창사’를 하면서 국내 신문 최초로 독자위원회를 구성했다.사회 각계에서 일하는 6명의 독자위원이 매달 모여 본지 보도 내용과 편집 방향에 대해 기탄없이 의견을 제시한다.임기는 1년.

한해 동안 활동해온 제1기 독자위원회(위원장 申坵植 무역협회 차장)는 지난달 28일 오후 본사 6층 대회의실에 모여 제2 창사 이후의 중앙일보 지면을 비판적으로 돌아봤다.

*** 홀로서기 아직 멀었다

삼성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중앙은 지면 개선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 성과가 독자에게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우선 '독립' 이나 '제2창사' 라는 말에 걸맞은 새로운 편집 방향이 명확히 드러난 것 같지 않다. 개성 확립에 의한 차별화에도 더 노력해야 한다.

"중앙일보가 고급지로 도약하려 노력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 미래를 지향하고 국제적인 안목을 지니려는 것 등이 그런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 신문들의 맹점인 '몰(沒)개성' 을 탈피하는 데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정치 기사에서 여야의 입장을 단순히 알려만 주는 관행도 그렇다.

대안 제시를 기대했는데 아쉬웠다. 예컨대 한 여당 의원이 야당 여성 의원에게 폭언한 사건을 에피소드로만 다루고 사회적 의제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 (鄭玉仙 주부)

"제2창사의 핵심은 '기사가 달라지는 것' 일텐데, 지난 한햇동안의 지면에서 좀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 층을 주로 겨냥해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사회 현상의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 중.장년층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도 다가서려는 노력은 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한다. " (李貞均 일산성신초등학교 교사)

"성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삼성으로부터는 독립했지만, 보광그룹 탈세사건과 언론대책 문건 사태를 보도할 때 중앙이 보인 태도는 불만스러웠다. 이런 경우 사주와의 관계 설정이 문제의 핵심이다. 중앙일보 내부에 견제 시스템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 (吳亮鎬 변호사)

"대기업들에 대한 자세도 짚고 싶다. 제2창사 직후이긴 하지만 지난해 3월 삼성생명의 주식 상장에 관한 기사들에서 중앙이 여전히 재벌 옹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느꼈다.

또 상황이 특수하긴 하나, 보광탈세.언론문건 사태의 보도에선 사주 중심 신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이후 정부 쪽에 기운 기사들이 종종 눈에 띄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조정우.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삼성과의 분리가 중앙일보 내부적으론 중요했겠지만 독자에게는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삼성에서 보광으로 맥이 이어지면서 혁신적인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하철 파업 사태나 보광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재경부장관의 전경련 비판을 크게 다루는 것을 보며 한 단계 도약하는 데는 아직 큰 걸림돌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 (金昌南 성공회대 교수)

*** 발상전환 더 노력하자

1면 기사가 다양해졌고, 기획취재팀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관심사를 심층 보도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다.

중앙의 장기인 각종 평가작업의 질을 계속 높여 나갔으면 좋겠다. 선거 관련 보도에 엄밀함과 공정성을 더할 필요가 있으며, 시점(時點)에 맞춘 다양한 기사 구성과, 주제를 다루는 시점(視點)의 문제를 더 연구해야겠다.

"중앙은 '평가의 신문' 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평가, 지자체 평가 같은 눈길을 끄는 기사들을 계속 실었으면 좋겠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의 여러 부문에 대한 평가작업의 강도와 깊이가 덜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 (이정균)

"정치 기사에서 보수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주요 정당 이외의 정치.사회 세력에 지면을 할애하는 데 인색하다. 정치 기사는 드러난 사실과 정치인의 발언만 보도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그런 일들이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선거 보도가 결과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는데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어쩔 수 없다' 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섹션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부의 일관된 주장과 방향이 있어야 한다. " (김창남)

"지면을 다양하게 꾸미려 애쓰면서도 정부 발표 기사에선 내용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새로운 시각에서 취재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독자들은 제목만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중요한 기사에는 제목을 정확히 달고 시각자료를 곁들여야 한다. 백화점식으로 나열하지 말고 뉴스가치가 작은 기사는 과감히 줄이자. " (정옥선)

"정치기사의 흐름을 보면 알게 모르게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게임' 이나 '전쟁' 으로 표현하는 것도 문제다.

총선연대의 낙천운동에 대한 2월초 이문열씨의 기고와 내부 칼럼은 억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안정당, 즉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왜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지도 의아하다. " (조정하)

"뉴스 가치 판단이나 지면배정에서 발상을 바꾸자. 너나 없이 크게 다루는 정치.선거 기사를 독자들은 사실 그리 열심히 보지 않는다. 또 중앙이 '정정과 반론' 을 타지보다 적극적으로 싣고 있다곤 하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지금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획기적으로 '정정과 반론' 을 1면에 실으면 어떨까. " (오양호)

"관련기사의 폭과 타이밍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총선연대의 낙천운동을 다루면서 중앙은 해외반응을 취급하지 않았다. 지난 1월 시민운동에 대한 '음모론' 이 불거져 나왔을 때도 다른 신문은 '음모론 터무니없다' 는 칼럼을 실었다. " (신구식)

*** 독자만족이 핵심이다

신문의 시민 교육 기능과 서비스 기능을 강화해 급변하는 시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하며,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면서 인쇄매체의 장점을 더욱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주부와 청소년이 문화기사를 많이 보는데, 기사를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정한 문화인이 되게 도와줘야 한다. 요즘 첨단기술과 산업얘기가 사회를 휩쓰는 가운데도 우리만의 문화를 알고 민족 정체성을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통을 그냥 소개하는 게 아니라 재해석하는 기사가 읽고싶다. 이같은 독자 수요에 부응해야 한다. 또 주부들은 날씨에 관심이 많은데,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배치돼 있다.

1면이나 다른 섹션의 커버면에 실으면 어떨까. 최근 선보인 'joins.com' 섹션은 시의적절하다. 중앙이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 (정옥선)

"중앙은 인적자원이 우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같은 여건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인쇄매체는 매우 불리하다. 권위있는 분석과 논평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각계각층의 독자 의견을 수용할 쌍방향 언로(言路)도 터야 한다.

인터넷쪽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중앙이 '인쇄매체 우위' 라는 사고의 틀에서 남보다 먼저 벗어나야 할 것이다. " (오양호)

"90년대 이후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있다. 신문들에서 사색이 담긴 기사를 보기도 어렵다. 중앙 문화면에 가끔 그런 기사가 나오는데, 지면을 더 많이 배정했으면 좋겠다. 경제기사가 재테크 등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 국내외 경제의 큰 흐름을 읽게 해주는 기사를 더 실었으면 한다. " (조정하)

"중앙일보의 의견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는 만화와 만평도 큰 구실을 한다. 새 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을 개발하자. 정치적 노선보다 감각이 문제다. 재래적인 감각으로는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수 없다. " (김창남)

"환경.노동.정보 등 다른 신문이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는 분야에서 앞서가자. 이를 위해 한 기자가 특정 분야에서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 전문가로 키워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중앙일보를 스스로 찾을 것이다. 별도 구독료를 받는 일요판의 발행도 차별화의 한 방법일 것이다. " (신구식)

"신문사는 지면 밖에서도 독자에게 열린 서비스를 해야 한다. 정보를 구하러 오는 독자에게 봉사하는 시스템을 갖추자. 일반인을 위한 미디어교육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연초에 신설한 '틴틴 경제' 면은 청소년 교육효과가 크다. 이런 방식을 정치.문화 등까지 확대할 수도 있겠다. " (이정균)

정리〓유광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