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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고객들 머릿속을 들여다보시게요? 헛수고 그만하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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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결국은 경제가 문제야!” 너도나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만의 뾰족한 해법이 있을 리 없건만 절로 한탄이 나옵니다. 이번 주엔 경제 흐름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담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개인’보다는 ‘집단’에 초점을 두고 소비심리를 파헤친 책과 진화심리학에 기초해 주류경제학 이론을 보완할 것으로 기대되는 진화경제학 관련서입니다. <편집자 주>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마크 얼스 지음
강유리 옮김, 쌤앤파커스
520쪽, 2만9000원

1997년 영국 다이아나 왕세자비가 사망했을 때다. 소식이 전해진 뒤 몇 주 동안 영국 전역은 애도의 열기로 들끓었다. 런던에 있던 생가, 켄싱턴궁,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는 꽃 수백만 송이가 헌화됐다. 장례 행렬을 보기 위해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가 목 좋은 곳에서 노숙을 한 이도 있었다.

누군가 그들 중 한 명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뭐랄까. 나도 이 일의 일부가 되고 싶은 거지…. 남들과 함께 조의를 표하고 싶기도 하고.”

이런 국민적 열풍은 누군가 일부러 조직한 게 아니다.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어떤 성향의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집단 행동에 참여했는지 일일이 분석하는 건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아마도 그저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었던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자기 행동에 대해 똑 부러진 철학과 이유를 대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나마도 일단 몸부터 움직인 뒤 나중에 ‘내가 왜 그랬는지’에 대한 논리를 개발해 낸 경우가 많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2002년 월드컵 한국-스페인 전을 응원하기 위해 서울 시청앞에 모인 시민들. “함께 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모여든 이들은 ‘무리’가 가진 힘을 보여줬다. [중앙포토]

‘대박 상품’이 태어나는 원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은 개인적 취향에 따라 구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뜯어 보면 사회 속에서 상호 작용을 통해 이미 취향이란 건 결정돼 있다. 따라서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맞춤형 세일즈를 펼치기보다는 이런 군집, 즉 허드(herd)의 성향을 꿰뚫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영국에서 가장 잘 팔렸던 BMW 3시리즈 오너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었다. 왜 이 차를 샀느냐는 질문이었다. 상당수가 ‘개인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었단 이야기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옷 입는 성향 등 행동 패턴을 보면 마치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똑같았다고 한다. 차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도 ‘뛰어난 기술’‘특별한 승차감’ 등 엇비슷한 내용 뿐이었다. 결국 성향은 한 줄기였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꽤 도발적인 결론이 도출된다. 고객 한 명 한 명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겠다던 그동안 마케팅 업계의 노력이 무의미했다는 것이다. 현재 어느 업계나 앞다퉈 하고 있는 CRM(고객관계마케팅), 포커스 그룹 인터뷰, 뉴로 마케팅 등의 방법론이 돈 낭비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선 소비자의 생각,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에 연간 약 20만 파운드가 지출된다.

그러나 한 리서치 결과 CRM 컨설팅을 받은 클라이언트 업체 가운데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 곳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헛돈만 썼다며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10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대중행동을 이끌어 낸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라▶‘가장 돈이 되는 고객(MVC)’보다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고객’에 타기팅(targeting)을 하라▶가장 강력한 수단인 입소문(word of mouth)를 활용하라 등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론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강조한다. 어차피 소비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슨 말을 나오든, 또 무엇을 하든 이를 직접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혼신의 힘을 다해 팀을 꾸렸다면 플레이는 그들에게 맡기고 터치라인 밖으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충고다. 하고싶은 말이 많겠지만 일단은 하프타임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책 곳곳에서 저자의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과연 현장의 전문가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지금도 전 인력을 동원해 멤버십 카드를 뿌리며 고객정보 캐내기에 여념 없는 브랜드 매니저들과, 회원 가입 때마다 신상정보를 캐묻는 인터넷 업체들에게 “쓸데 없는 짓 그만두라”는 충고가 과연 먹히겠느냐는 것이다. 고객관리·인력관리·매체관리·관계관리 등 각종 ‘관리(management)’에 목매고 있는 기업 경영자들에게 “너나 관리하세요”라는 말이 들리겠냐는 것이다.

다만 저자의 말대로 어떤 단기 처방을 기대하지 않고, 시장과 비즈니스 전체를 되짚어보려 한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숲을 조감하는 안목’을 원한다면 말이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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