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죄수복 입고 전국을 누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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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광주지법의 피고인 3명 법정 탈주사건은 우리의 교정행정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이들이 죄수복 차림으로 지하철.택시를 이용해 서울 도심까지 진입했는데도 검문은 물론 목격자 신고조차 없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탈주범 2명이 하루만에 검거돼 다행이지만 당국은 주범격인 나머지 1명의 검거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흉기의 출처나 보관 경위부터가 의문이다. 재소자가 집단으로 20㎝가 넘는 살상용 흉기를 지닌 채 출정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구치감 쇠창살로 만들었다는 게 범인의 진술이라지만 믿기 어렵다. 아무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감시의 눈을 피해 쇠창살을 3개나 잘라 흉기를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또 출정 때 재소자 몸수색은 가장 초보적 수칙인데 어떻게 흉기를 감춰 나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검신기는 왜 작동하지 않았으며 당시 교도관들은 무얼하고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밖에 범인 탈주과정에서 드러난 경찰 늑장 신고와 검문 소홀, 교도소 안팎의 공모세력 여부, 교도관의 직무 유기.태만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이에 따른 문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탈주범들이 죄수복에 고무신을 신고 하룻밤 사이 광주에서 서울까지 누비고 다녔지만 시민 제보가 전혀 없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신문.방송이 잇따라 탈주사건을 한창 주요 뉴스로 다루는 시간에 이들이 변장도 하지 않은 채 택시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 한복판까지 잠입했어도 목격자 신고가 없었다는 것은 무관심.무신경을 넘어선 시민 신고정신의 실종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건 발생 후 법무부가 밝힌 "흉악범 재판시 재판장과 협의해 수갑.포승을 한 채 재판받도록 하겠다" 는 재발방지 대책은 시대에 역행하는 무리수다.

피고인의 방어권.인권보호 차원에서 법정 안에서 흉악범의 결박과 수갑을 풀도록 한 것이 1980년대 초부터였으니 법무부 발상은 재소자 인권을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들어 법무부의 '열린 교화행정' 으로 사각지대였던 재소자 인권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미결수의 사복차림 출정, 수형자 외출.외박 확대, 보호시설 내 공중전화 설치, 편지 검열 완화, 재소자 두발 자유화, 민간교도소제 도입 등 이미 시행됐거나 추진 중인 것들이 그것이다.

재소자 탈주사건이 재발돼서는 안되고 이를 위한 장비.시설이나 인력 보강, 제도 개선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교정공무원의 열악한 근무환경도 살펴봐야 한다. 탈주사건과 재소자 인권신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탈주사건을 이유로 '열린 교정' 이 뒷걸음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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