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 일본의 학생운동은 1960년대 후반이 전성기였다. 제3세계의 사회주의혁명 열기와 겹친 시점이어서 세계사적 의미도 크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같은 학자는 공산당선언이 발표된 1848년과 학생운동 극성기인 1968년을 '진정한 의미의 두 혁명' 이라고 평가한다. 68년 학생운동은 '정치권력을 획득하지 않고도 세계를 변화시킨 유일한 혁명' 으로도 불린다.
60년대 후반의 한국은 본격적인 독재체제로 이행하던 시점이었다. '혁명' 이라는 말은 군사쿠데타를 미화하는 데 쓰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전에 이미 4.19와 6.3의 전통을 갖고 있었고, 70년대의 민청학련 세대와 80년 '서울의 봄' 세대, 광주항쟁 세대, 그리고 이른바 386세대를 배출했다.
변혁운동에는 뒷얘기가 따른다. 90년대 중반 우리 문단에 쏟아져 나왔던 '후일담 소설' 도 한 예다. 또 쟁쟁했던 운동가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처지와 성향이 바뀌기도 한다.
5년전 일본에서는 60년대 학생운동 조직 전공투(全共鬪)에 몸담았던 4천9백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다.
40대 후반 나이로 사회 각계에 다양하게 퍼져 있던 응답자들은 '현재의 최우선 관심사' 로 자신의 직장과 일(17.1%), 두번째로는 노후.복지문제(16.2%)를 꼽았다.
정치참여.사회운동이 세번째(13.1%)로 꼽혔고, 자녀교육(7.8%)과 가정(7.6%)을 든 사람도 적지 않았다.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서 최루탄에 맞서거나 아사마 산장에서 총을 들고 혁명을 부르짖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의 경우 80년대는 아직 너무 가깝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다투어 386세대를 영입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출마에 앞서 적절한 통과의례를 거쳤어야 했다는 비판도 많다.
80년대 학생운동 참여자 중에는 고문후유증.생계곤란 등으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이들도 적지 않은데 몇몇은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하는 현실에 허탈감을 표하는 시각도 있다.
어제 서울 여의도에선 일부 서울대생들이 정당 공천을 받은 386세대 정치인에 반대하는 '386정신 왜곡 보수정치인 규탄대회' 를 열기도 했다.
김광규는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에서 4.19세대가 혁명 후 18년 만에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지만, '짐짓 중년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는' 풍경으로 모임이 끝났다고 노래했다. 386세대의 정치권 진입만은 '늪' 에 발을 들여놓은 모양새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