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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스타' 6년 만에 불명예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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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때 국내 금융업계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던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회계부정의 불명예를 떠안고 금융계를 떠나게 됐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0일 김 행장에 대해 문책 경고를 결정한 제재심의위원회의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금융회사의 임원이 문책 경고를 받으면 3년간 금융회사의 취업이 금지된다. 이에 따라 김 행장은 10월 말 임기가 끝나는 대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제재심의에 참여했던 김대평 금융감독원 은행검사2국장은 "회계위반에다 경영부실 문제를 가중해 징계수위를 '업무집행 정지'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김 행장의 공로를 감안해 문책 경고로 매듭지었다"고 밝혔다.

◆ 새 바람 주역서 금융권 이단아로=증권사 전문경영인 출신인 김 행장은 6년 전 보수적인 은행권의 행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김 행장은 주택은행장에 부임하면서부터 파격적인 경영혁신을 선보이며 줄곧 국내외 금융계의 관심 대상이었다. 3년 전 주택.국민은행의 통합은행장이 된 뒤에도 '주주 가치의 극대화와 경영 관행의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과감한 변화를 이끌었다. 2000년 10월에는 통합 국민은행의 주식을 국내 은행 최초로 뉴욕증시에 상장도 했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국민은행의 대주주가 된 외국인들에겐 반가운 것이었지만 국내 금융당국과는 마찰과 대립을 빚었다.

지난해 LG카드 사태는 김 행장이 주장한 시장주의 원칙과 정부의 개입 불가피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계기였다. 김 행장은 주주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금융권의 공동부담을 전제로 한 LG카드 살리기에 번번이 반발했다. 금융시장 시스템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 때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고, 금융시장의 일원인 개별 금융회사들도 여기에 협조해야 한다는 정부의 체면은 구겨졌다.

미국의 비즈니스위크는 2002년 김 행장을 '은행장 경영혁신의 모델'로 평가했고, 미국 출판사 맥그로힐이 펴낸 경영학 교과서에는 사진과 함께 '은행 경영의 새로운 리더십의 전형'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금융계에서 김 행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시장주의의 상징이라는 찬사에서부터 내부 조직 통합에 실패한 인기영합적인 경영인에 불과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 관치 논란과 중징계 미스터리=김 행장이 중징계를 받은 이유는 국민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5500억원의 회계처리를 잘못했고, 1586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게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종합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같은 회계상의 문제점보다 국민은행의 경영실태가 은행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할 만큼 부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직 은행장의 퇴진을 몰고온 중징계 조치에는 단순히 회계부정만이 아니라 경영 부진도 어느 정도 감안됐다는 인상을 풍긴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금융감독당국의 태도가 민영화된 은행에 대한 '신(新)관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회계 기준을 위반한 것이 사실이지만 LG카드 사태 등에서 보인 김 행장의 비협조적인 행태에 대한 암묵적인 제재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외국인이 77.92%의 지분을 가진 가운데 지난해 정부 지분을 완전히 사들여 은행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췄다. 감독당국은 김 행장이 이사회 독립성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왔지만 정작 행장 자신에 대한 견제장치는 없다는 데 주목했다. 금감위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도 경영 실적이 부진하거나 회계 투명성이 의심되면 은행장 경질을 직접적으로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동호.나현철 기자

*** 고민에 빠진 김 행장

김 행장은 이날 3개월 감봉의 징계를 받은 윤종규 부행장 등 임원들과 함께 시내 모처에서 대책을 숙의했다.

여의도 본사에 출근하지 않은 김 행장은 이날 오후 "합병 관련 회계를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을 위해 타당하게 처리했다"며 금융감독위원회의 징계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피력했다. 그러나 공식 대응은 13일 이사회를 열어 결정하기로 했다. 이사회에선 재심 청구 등 법적 대응 여부와 후임 행장 후보 선출 방법과 일정, 후임 행장 선정 때까지의 경영체제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후임 행장으로는 관료 출신이 배제된 가운데 이성규 부행장의 내부 승진 또는 김상훈 전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 심훈 부산은행장 등 민간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노조가 물과 기름처럼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어 누가 행장이 되든지 국민은행의 경영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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