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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화장실은 얼굴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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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인류를 위해 사색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업주들도 화장실을 짧은 시간이나마 명상할 수 있는 장소로 생각하고 깨끗하게 바꾸면 손님이 몰리고 돈도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손님들도 공중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는 데 협조하면 우선 자신에게 좋고 선진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도 기여하게 된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4백66만명. 국내 인구의 10%에 이르는 많은 숫자다. 때마침 2001년 한국 방문의 해, 2002년 월드컵 대회가 기다리고 있어 앞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국내 식당이나 관광지 등의 화장실은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공중 화장실이 절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식당 종업원들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다음 손을 씻지 않고 나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역겹다.

필자가 만난 한 호주 유학생은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나도록 화장지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안돼 곤욕을 치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공중 화장실에 휴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은 무엇보다 '공중 화장실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하는 거울' 이라고 생각하면서 실천하는 시민의식이다.

외국에는 화장실 때문에 유명해진 음식점이나 카페가 많다. 국내에도 눈길 끄는 화장실로 입에 오르내린 곳이 없진 않다.

한양대 주변 '자전차 도둑' 이란 카페의 여자 화장실에는 세면대 바로 위에 거울 대신 남자의 나체 토르소(목과 사지가 없는 모형)가 있는데 수도꼭지가 성기 모양을 하고 있다.

남자 화장실에선 여자 나체의 가슴 한쪽에서 수돗물이 나온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잠시 민망해하지만 이내 즐거운 마음으로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게 만들어 준다.

또 종로의 새 명물로 부상한 종로 타워에서 개장한 탑 클라우드의 화장실은 불빛에 둘러싸인 서울 야경을 감상하며 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년간 한국관광공사에서도 화장실 개선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 결과 다수의 고속도로 휴게소.철도역 등의 화장실에서는 그림액자가 걸리고 음악이 흐르게 됐다. 또 명찰을 단 화장실 담당자가 관리에 나서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이같은 화장실 개선 캠페인의 백미는 최근 중앙일보에서 전개한 '여자 화장실 확 바꾸자' 는 캠페인이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화장실에 대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

건축가.행정부처들도 화장실의 경제적.문화적.사회적.교육적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건립하는 공중 화장실은 그 지방의 역사와 문화.전설.공예기술 등이 깃들여 있는 문화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지방의 작가.화가.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 공중 화장실을 예로 들어 보자. 이 곳은 많은 관광객과 학생들이 방문하는 곳이므로 철모 모양의 외관에 화장실의 역사나 에피소드, 올바른 화장실 사용 매너 등을 담은 재미있는 사진으로 액자를 만들어 내부 장식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또 서울역 같은 곳은 화장지 값만 1년에 7천만원 이상 필요하나 예산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주변 회사나 가게의 광고를 화장실에 유치해 그 광고비로 예산을 보충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과 한국을 동시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못하면 화장실 때문에 국제적으로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21세기에는 어느 때보다 새로운 정보와 문명을 빠르게 습득하고 적응해 나갈 줄 알아야 한다. 필요한 일을 재빠르게 해결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최대 장점인 만큼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중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 화장실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최근 확산되고 있는 깨끗한 화장실 가꾸기 운동에 힘입어 시내 빌딩이나 상가들도 다중이용 화장실을 시민이나 관광객에게 보다 더 개방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충경 <한국관광공사국내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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