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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강은교 '매화'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매화 향기 몇 그램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하늘을 향하야 눈부신 옷을 벗어 흔든다

발자국 하나가 그 향기를 집는다

매화 향기는 매화의 긴 상처

(저렇게 어여쁜 상처들이 향내 던지며 길을 걷고 있다!)

매화 향기 몇 그램

발자국마다 눈부시게 수런거리고 있다

-강은교(55) '매화' 중

남쪽에서 올라오는 매화 소식에 바람도 향기로운 아침이다. 눈과 더불어 피는 매화는 이 나라 선비와 여류들이 매운 정절의 상징으로 이름을 날려 왔지만 여기 강은교가 집어내는 향기의 무게는 아무도 측량해낸 이가 없었다. 향기 '몇 그램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고? 그 향기가 '긴 상처' 임을 보여주는 이 시는 또 얼마나 긴 상처를 입은 다음에야 피워낸 매화일까. 매화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시인의 발자국이 눈부시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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