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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바꾸는 사회] 3. '사이버속의 나' -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하나의 환상이 지구촌을 휘몰고 있다.

가상현실이란 환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상현실 자체가 환상은 아니다.

그것을 나의 현실과 동일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환상이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 구석구석을 주유(周遊)하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다 보면 마치 온 우주가 내 손 안에 든 듯이 가슴이 뻐근해진다.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나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상현실에 대한 환상은 바로 자아의 극대화에 대한 환상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가령 당신이 인터넷을 통해 서울과 뉴욕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어 뉴욕의 전부를 장악했다 치자. 그러나 여기에도 제로섬 법칙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당신이 뉴욕을 점령한 만큼 뉴욕 시민이 창업한 온라인 쇼핑몰도 당신을 점령한다.

그 쇼핑몰은 당신의 호주머니로부터 돈을 뽑아내려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나' 의 확장은 나의 착각이고 사업가의 현혹에 불과하다.

정확한 것은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렇게 해서 나와 타자들이 무한히 겹쳐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일어나는 것은 존재 단위의 변경이다.

예측할 수 없이 엉키고 윤곽이 불분명한 다형적 존재가 새로 태어나고 그것은 개체 단위의 생명인 '나' 의 통제권을 추월해 움직인다.

물론 '나' 는 그 존재의 일부로 참여한다.

그러나 그 '나' 는 악어의 이빨 사이를 깡총거리는 한 마리 악어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한창 커나가고 있는 저 다형적 존재는 인간 개개인을 몸의 일부로 활용할 뿐이다.

그리고 그 다형성의 성격에 맞춤하게 인간을 잘게 쪼개놓는다.

개인이 여러 겹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개인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인간의 것이라는 믿음은 물론 여전히 압도적이다.

또한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반박도 끊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튜링이 논증하고 큐브릭이 상상했듯이 기계가 사유하게 된다면 그 기계는 망치나 호미가 아니다.

인간의 손에 쥐이는 도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순수한 알고리즘, 논리 연산 체계다.

그 체계가 사유를 시작한다면 세계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능력에 있어서 인간은 결코 그 자동관리체계에 미칠 수 없다.

그런데 기계가 사유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기계가 인간처럼 삶을 반성하고 재조정하는 윤리감각을 가졌다는 것은 논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꾸만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확장에 대한 환상이든, 분열과 파국에 대한 공포이든 그 뿌리는 사유하는 기계가 어떤 선의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다.

지금의 문제는 확장에 대한 환상에 빠져들 일이 아니라, 어떻게 분열을 실습하는가이다.

존재 단위가 바뀌는 시점에서 독립적 단위로서 개인의 분열은 불가피한 추세다.

분열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 세계를 주물럭거릴 수 있으리라는, 그래서 '신과 같이 되리라' 는 욕망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해방 위에서만 문명의 방향에 대해 겸허한 탐색이 가능할 것이다.

정과리 충북대 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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