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통신대란 누가 책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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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통신대란을 동반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지하공동구 화재사건. 지난 18일 오후 8시30분 발생한 이 사건은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록 "내 책임이요" 라고 나서는 기관이 한 군데도 없다.

화재가 난 지하공동구엔 전화선.광케이블.배전선로.상수도관.지역난방관이 매설돼 있다. 관련부서는 한국통신.한국전력.상수도공사.지역난방공사 등.

이 외에도 조명시설.출입구관리 등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맡고 있다. 모두 5개 기관에서 7개 시설물을 관리하고 있는 셈. 사건발생 직후 기관별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시설관리공단측은 "조명시설 등 부대시설만 관리하기 때문에 다른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이 없다" 고 말했다.

한국통신측은 "누전으로 전화선에 불이 옮겨 붙었을지는 몰라도 전화선 자체에서 불이 날 수는 없는 일" 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전측은 "정확한 화재원인이 규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누전 때문에 불이 났다고 몰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항변했다.

사건수습 과정에서 시설관리공단측이 보인 말바꾸기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1996년 6월 지하공동구에 대해 합동안전점검을 실시했다. 95년 3월 서울 종로5가 지하 전화구 화재로 이 일대의 '전화대란' 이 발생한 후속 조치였다.

이 합동안전점검에서 이들 기관은 시설 노후화로 누전 위험이 감지돼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이번 화재로 서울시에서는 발빠르게 화재발생 다음날 서울시재해대책본부를 마련했다.

하지만 대책본부에 모인 직원들은 해당기관에서 들어오는 팩스만 받을 뿐 화재원인이나 대응책을 알아보기는 커녕 책상에 앉아 현장상황을 기다릴 뿐이었다.

서울시 한 직원은 "급하게 연락받고 나와 화재상황은 전혀 모른다" 며 "다른 기관에서 처리할 문제" 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자칫 통신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일선 공무원들도 문제해결보다는 '강 건너 불구경' 이었다'. 대형사고가 터지고 나면 꼭 나오는 말이 '종합대책' 이다.

삼풍사고 때도 그랬고 지난해 인천 호프집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국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지하공동구에 대한 대책이 궁금하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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