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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송단마을 복조리 만들기 5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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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20년쯤 전,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아침 일찍 대문 안에 복조리가 놓여 있곤 했다. 그날 오후에는 어김없이 "복조리값 받으러 왔습니다" 는 말과 함께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던 것이 옛 추억의 편린으로 남아있다.

지금이야 '강매' 라고 항의하겠지만 당시는 집안에 복도 불러오고 대부분 고학생인 복조리 장사도 도울 겸 해서 화내는 법 없이 값을 치르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화에 밀리면서 복조리 장사는 물론 대보름날 복조리를 내걸던 풍습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런 복조리를 묵묵히 만들며 전통을 이어가는 마을이 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마을' 로 선정한 백아산 기슭의 송단마을(전남 화순군 북면). 35세대 중 25세대가 농사가 끝난 뒤 11월부터 대보름 직전까지 복조리를 만든다.

이 마을이 언제부터 복조리를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릴 적 어르신들이 '5백년쯤 됐다' 고 말씀하셨다" 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송단마을의 복조리는 보통 대나무가 아니라 1년생 산죽(山竹)으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보는 것처럼 누렇지 않고 연두색이다.

10월말부터 백아산에서 볼펜보다 조금 가는 산죽을 베어다 하루쯤 말린다. 껍질을 벗기고 네조각으로 자르면 복조리를 엮는 재료가 된다.

지난 11일 송단마을을 찾았을 때 박영수(64)씨 집에서는 박씨 부부와 주민 3명이 곡성군 청년회로부터 주문받은 복조리 1백개를 만들고 있었다.

만다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1시간이 지나자 방바닥에 복조리가 30개쯤 쌓였다.

겨울이면 늘 이렇게 함께 일하다보니 '조리 사돈' 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겨우내 만든 복조리는 담양의 죽세품 상인들이 사간다. 1개 4백~5백원. 요즘 중국에서 값싼 복조리가 수입돼 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송단마을에서 한해 만들어지는 복조리는 10만개 정도. 박씨는 "이번 겨울에 5천개쯤 만들어 팔았다" 며 "옛날에는 복조리로 애들 공부를 시켰지만 요즘은 애들이 다 커서 약값으로나 쓴다" 고 말한다.

송단마을 젊은이들은 거의 다 도시로 떠나 나이 쉰 넘은 사람들이 젊은 축에 끼일 정도다. 그래서 세월이 더 흐르면 복조리 마을의 전통이 끊기지 않을까 주민들의 걱정이 대단하다.

호남고속도로에서 광주를 지나 옥과IC(인터체인지)에서 국도 29번을 이용해 화순 방향으로 달리다 원리 네거리에서 좌회전해 5분 정도 들어가면 송단마을이 나타난다. 숙박시설로는 금호 화순리조트(0612-370-5000)가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복조리 구입문의〓이장 오종원씨(0612-373-9514).

화순〓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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