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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밸리'로 뜨는 청담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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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테헤란로가 '테헤란밸리' 라면 청담동 거리는 '푸드밸리' 다. "

요즘 청담동 일대 음식점 주인들이 모이면 흔히 하는 말이다. 이 말의 속뜻은 테헤란로나 청담동 거리에 모여드는 사람과 이들이 벌이는 사업 내용에 닮은 점이 많다는 것.

청담동거리엔 테헤란밸리와 마찬가지로 벤처정신이 넘쳐난다. 나이어린 젊은 사장들이 퓨전푸드나 독창적인 분위기의 정통레스토랑을 내세우며 모험을 걸고 있는 것이다.

◇ 컨텐츠 싸움이 한창이다〓청담동 거리 음식점 간판에 적힌 상호는 국적불명의 알 수 없는 이름들이 태반이다.

'시안' '쉐봉' '본뽀스또' '파진' '루지' '고센' '미임' '완차이' '물바' '바바' '마고' 등. 겉모양새도 서구스타일의 전통 한정식집, 카페로 착각될 정도인 중국집, 일본식 라면집 등 톡톡 튀는 곳이 많다.

종업원이 내미는 메뉴판도 설명을 듣지않고는 주문하기 어려운 곳이 수두룩하다.

레스토랑별로 자신만의 컨턴츠(인테리어와 메뉴)를 내세워 손님모시기에 열중인 것. 이로 인해 청담동 일대는 온 세계의 맛이 어울어진 다국적 레스토랑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 공동투자.스톡옵션도 있다〓 '식당정도는 나홀로 창업' 이란 말도 이곳에선 옛말. 일부 자영식당도 눈에 띄지만 초기투자비만 수억대를 들인 고급레스토랑이 많고, 대부분 3~5명의 투자자들이 공동투자를 하고 있다.

경영에도 스톡옵션제와 소사장제도를 도입하는 곳이 있으며 주방장이나 점장을 데려오기 위해 억단위 돈을 지출한다.

중식당 '완차이' 와 '루지' 가 소사장제와 스톡옵션을 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으며, 이태리식당을 표방한 '뽄뽀스또' 가 호텔주방장을 연봉 1억원에 영입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직원들 급여는 물론 퇴직금.연월차휴가 등 대기업 수준의 복리후생을 보장하는 곳도 많다.

◇ 30~40대 젊은 유학파 사장들이 주도〓청담동 레스토랑 사장들은 학력이나 경력면에서도 테헤란벨리에 뒤지지 않는다. 주방일을 하다가 따로 개업을 하거나 회사에서 밀려나 마지못해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니다.

미국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마쳤거나 해외에서 전문적인 외식업을 공부하고 돌아온 엘리트사장들이 청담동 거리를 주도하고 있다. '시안' 의 이상민(32)사장, 카페 '드꼬레' 의 여주인 케이김(38)씨, 중식당 '마리' 의 신성순(40)사장, 퓨전레스토랑 '파진' 의 도세훈(36)사장 등이 그렇다.

이들은 고객서비스나 신메뉴 개발에도 극성이다. 사장이 직접 나비넥타이를 메고 손님을 맞이하거나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락거리기는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 한해에 1~2회 정도는 주방장이나 점장을 데리고 이태리.불란서 등 선진외국의 현장을 누비며 배운 새로운 음식을 손님들 식탁에 올린다.

◇ 우리도 우물안 개구리는 싫다〓청담동 레스토랑 사장들은 이를 발판으로 삼아 해외진출을 꾀한다는 계획도 있다.

중식당 '마리' 와 한식레스토랑 '쉐봉' 등 이미 청담동 일대에 4개의 식당을 오픈한 신성순사장. 그는 "2월중에 일식바 '담' 을 새로 열고, 다음 달에 인도식당 '강가' 를 추가 개점한다" 며 "올 하반기부터 이들중 경쟁력이 있는 식당을 골라 일본으로 진출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최근 문을 연 '파진' 의 도세훈사장이나 중식당 및 냉면레스토랑 '루지' 의 주인 정수원(28)씨도 해외시장에 분점을 개설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 약속된 '성공의 땅' 이 아니다〓테헤란밸리에서 하루에 몇개의 벤처기업이 문을 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한 달에 몇몇 레스토랑이 소리없이 사라진다.

미국 MBA를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2년간 웨이터생활까지 했던 30대사장이 특급호텔 총주방장까지 영입해 한동안 화제가 됐던 M레스토랑. 개점한지 1년도 못채우고 중도하차했다.

또 과다한 투자와 컨텐츠의 실패로 고객들에게 외면당하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제법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강남지회 엄주용씨는 "청담동 지역에 한달에 보통 10~20여곳이 새로 들어서는 반면 5군데 이상이 문을 닫는다" 고 말했다.

청담동 '푸드밸리' 에 가세하려는 음식점 벤처사업가들의 뜨거운 열기를 입증하듯 추운 겨울날씨 속에서도 거리 곳곳엔 새로 문을 열 레스토랑의 공사가 한창이다.

청담동 푸드밸리 사업가들은 테헤란밸리처럼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긍심에 산다고 한다.

신성순사장은 "하드웨어격인 겉치장(인테리어)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소프트웨어(경영)나 컨텐츠(음식의 질)에 주력하는 것이 청담동밸리에서 성공하는 열쇠" 라고 강조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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