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제2외국어 시대흐름과 '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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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북 전주시 A고는 최근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제2외국어 희망 과목' 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일어가 40%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는 중국어(20%).불어(20%).독어(10%).기타(러시아.스페인어)순이었다.

그러나 학교측은 불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했다. 제2외국어 교사로는 이 학교에 불어교사만 2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D고는 제2외국어로 불어만 가르친다. 불어교사만 2명 있다보니 학생들이 외국어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셈이다.

서울 K고 여학생은 불어, 남학생은 독어만 배울 수 있다. 한 과목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몰리면 내신성적 산정, 반 편성 등에 어려움이 있어 아예 입학할 때부터 남.여로 반을 나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사회적 수요는 중국어나 일어쪽인 것 같으나 기존 교사의 처리문제 등으로 개선이 어렵다" 고 털어놨다.

상당수의 고교가 제2외국어를 학생들의 희망이나 적성 등은 아랑곳없이 학교측 편의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마다 단일 제2외국어가 고정돼 있기 일쑤다. 그마저도 학생들의 희망과는 동떨어져 있다.

전주시의 27개 고교 중 제2외국어를 두가지 이상 복수로 가르치는 곳은 8개교에 불과하다. 전체의 70%를 넘는 19개교는 한 과목으로 통일돼 있다.

전문가들은 "제2외국어별 교사수를 시장 수요에 맞게 쇄신해야 하며 학교별로 특정 어학교사가 편중돼 있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고 강조한다.

불어를 가르치는 수원 A고 金모(43)교사는 "제2외국어 교사들을 교육청 소속으로 해 각 학교에서 신청 받은 뒤 배정해야 획일적인 교육을 개선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현재는 독일어.불어의 수요가 떨어지는 데도 교사는 구태의연하게 이쪽에 편중돼 있는 지역이 많은 점도 문제다.

한편 일부 지역에선 제2외국어의 일어 편중 현상도 심하다.

광주시에서 한 과목의 제2외국어만 개설하고 있는 31개 고교(전체는 56개) 중 16개 고교가 일어를 채택하고 있다. 나머지 8개교는 독어, 6개교는 불어, 1개교는 중국어다.

경기도에선 단일 외국어를 선택한 1백36개 고교(전체는 2백84개) 중 1백9개교가, 제주는 8개교 전체가 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광주 C고의 한 학부모는 "아들을 장차 독일로 유학보내기 위해 독어를 배우게 하려 했으나 학교측이 일어로 통일시켜버렸다" 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찬민.장대석.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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