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이장춘대사 파문'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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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은 11일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고등고시 2년 후배로 평소 멀지 않게 지낸 이장춘(李長春)본부대사의 돌출적 행동 때문에 적잖이 고민하고 있다고 참모들은 전했다.

李장관은 이날 오전에만 두차례나 반기문(潘基文)차관 등 주요 간부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기고문 파문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시종 격앙된 상태에서 참석자들은 강경론과 온건론으로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여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李장관도 "직원들의 반응이 매우 좋지 않다" 는 보고를 받았으나 "엄정하고 신중하게 결정하자" 는 원칙론만 제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李대사의 메가톤급 인사비판 기고문이 몰고 온 후폭풍이 외교부를 통째로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고위간부'는 물론 대다수 직원'들은 "고위직 신분으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며 李대사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인사.정책을 다루는 자리에 있을 때는 개혁을 하지 않고 왜 나가면서 조직에 침을 뱉느냐" 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계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은 파문확산에 대한 우려와 징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징계를 강행할 경우 李대사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비리사건이 아닌 만큼 중앙징계위원회가 과연 징계결정을 내릴지도 의문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징계문제에 대해 李대사는 "잘못한 게 전혀 없는 만큼 확전(擴戰)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 고 말해 '징계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게다가 외교부 일부에서 "방법론에 문제는 있지만 기고문의 상당부분은 사실이고 설득력이 있다" 는 입장을 보이는 것도 부담이다.

사표를 제출한 李대사는 이날 외교부 기자실을 찾아와 "본의아니게 파장을 불러일으켜 유감" 이라고 밝혔다.

"조직을 위해 뭔가를 남겨야겠다는 충정에서 기고하게 됐다" 면서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李장관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며 파문의 확대를 원치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李대사의 기고가 李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추진 중인 인사.조직 개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李장관도 11일 "외교부 인사개혁안을 올 상반기 중으로 앞당겨 완성하겠다" 고 밝혔다.

李장관으로선 파문의 조기진화를 위해서라도 진행중인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을 얻은 측면도 있는 셈이다.

징계문제에 대해 李대사는 "잘못한게 전혀 없는 만큼 확전(擴戰)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 고 말해 징계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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