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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세종께 세종시를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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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연기군에 급조되는 세종시에도 금강 물길이 있어 도시학의 기초를 어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빼어난 경치를 곳곳에 품고 있는 그 푸른 강물이 먹여 살릴 인구량은 이미 대전과 공주로 포화상태라는 것이 문제다. 인구가 도시경쟁력을 좌우하는 지방자치시대에 인근 도시들이 세종시를 위해 이주민을 모집할 리 없으므로 인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세종시의 최대 고민이다. 인구확보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검토에 앞서 천도(遷都)를 명령한 저 ‘대못 박기 정치’가 세종시의 태생적 딜레마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대못을 빼자니 정쟁과 민란이 걱정이고, 계속 박자니 전란(錢亂)·행정교란에, 혹여 불량도시가 만들어질까 고민이다.

원칙론과 수정론에 끼여 국민은 헷갈리고 정치는 교착상태로 치닫는다. 누대로 신뢰를 잃어온 정치풍토에 4대 강 역사(役事)가 동의 없이 시동을 건 마당에 세종시의 밑그림을 바꾸자는 제안도 파당적 모의가 낳은 정권프로젝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원칙론 사수’의 정서다. 수정론은 원칙론의 근거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더 원칙론적이다. 호주처럼 광활한 대륙도 아니고, 캐나다처럼 민족구성이 복잡해 새로운 정체성이 절박하지도 않은 한국에서 행정중심도시는 불요불급이다. 신속 효율 행정이 국가경쟁력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이때 행정부의 절반을 싹둑 잘라 먼 곳에 보내는 결정이 백년대계였나, 아니면 정치적 담합이었나? 정치적 신뢰, 현세대의 민복, 후세대의 번영을 동시에 살리는 방안은 원칙론인가, 수정론인가?

퇴로가 막힌 양자택일의 이 문제를 조선 최고의 현군 세종에게 물어도 비책이 없었을 듯하다. ‘어린 백성’이 아니라 온갖 지식정보로 무장한 ‘박식다언(博識多言)한 백성’이 다투어 제 뜻을 펼치고 있기에 세종 스스로도 난감했을 것이다. 여전히 고려왕조의 기억에 사로잡힌 백성들을 새로이 통합하고 중화로부터 자립된 조선을 구축하는 일이 세종의 가장 큰 과제였다. 수정주의 개혁의 한가운데 훈민정음 창제가 있었다. 그런데, ‘한자를 버리는 것은 오랑캐가 되는 지름길이며 문명의 큰 흠절’임을 외치는 최만리 같은 원칙주의자의 맹렬한 저항을 뚫고 수정론을 펼치기엔 대제학 정인지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쉽게 물러날 세종이 아니었다. 세종은 당상관들에게는 맨투맨 설득전을, 백성들에게는 전면전을 동시에 구사했다.

세종이 최만리에게 공개 질의를 했다. “네가 한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아느냐?”고(박현모 저,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 네가 그것을 모르면 누가 백성에게 발음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가를 힐책했던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를 집요하게 반대한 학사 김문을 장(杖) 100대, 부제학 정창손을 파직시켰고, 최만리·신석조·하위지는 의금부에 가뒀다 풀어줬다. 그런 한편, 추진세력을 가동시켰다. 정인지를 필두로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 등 당대의 학자들이 정음창제의 뜻을 널리 알리게 했다. “이 글자로써 백성들은 송사를 심리하더라도 그 실정을 알 수 있고, 바람소리, 학 울음, 닭이 홰치는 소리, 개 짖는 소리도 적을 수 있다”고.

훈민정음보다 더 저항이 거셌던 조세개혁(貢法) 때는 아예 과문(科文)으로 출제해 쟁점화했다. 조사관이 매년 수확량을 검사해 세액을 매기는 임의성을 타파하고 여러 해의 평균수확고로 과세하는 신안(新案)이 어떠냐는 것을 공론에 부친 것이다. 조정도, 일반백성도 손익계산에 빠져 국론분열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세종은 대책 2단계로 돌입했다. 조선 오백 년 통치에 전무후무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것. 전국 17만2806명에게 찬반 여부를 물은 결과 9만8657명 찬성, 7만4149명 반대였다. 그런데, 곡창지대인 영호남지역엔 찬성이, 산악지역인 함길·평안도는 반대가 많았다. 세종은 반대의사를 존중해 과세기준을 중간수확량보다 약간 낮춰 잡았고, 그것을 새로운 세법으로 전격 도입했다. 조선의 태평성대가 열렸다.

길의 교차점이 아닌 저 들판에 세울 세종시, 정치적 담합으로 탄생한 세종시를 세종께 물으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민에게 물어라.’ 민관합동위원회가 도달할 답안도 다시 공론에 부쳐야 하고, 혹시 수정안이 낙점되더라도 왜 그것이 편민(便民)·위민(爲民)이자 후세대를 위한 창생민복(蒼生民福)인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