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국방장관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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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제사회가 코소보 학살의 전범으로 지목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의 측근들이 최근 잇따라 살해돼 유교연방내 정정불안이 가속화하고 있다.

◇ 피살〓7일 오후(현지시간)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파블레 불라토비치(52)국방장관이 베오그라드의 식당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번 사건은 '발칸의 도살자 아르칸' 으로 불렸던 젤리코 라즈나토비치가 지난달 15일 역시 총격을 받고 사망한 지 채 한달도 안돼 발생한 것이다.

유고 국영 탄유그 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불라토비치는 베오그라드 시내 주거지역에 있는 라드 축구클럽 식당에서 다른 일행 2명과 함께 식사를 하던중 저격당했고 인근 군병원으로 옮겼으나 곧 숨졌다.

범인은 식당 창문을 통해 불라토비치 일행에 총격을 가한 뒤 달아났다. 라드 축구클럽 식당은 불라토비치는 물론 밀로셰비치도 회합장소로 애용하던 곳이다.

불라토비치 피살 직후 유고 정부는 즉각 비상각료회의를 소집, 대책을 논의한 뒤 "불라토비치는 전형적인 테러행위의 희생자였다" 며 "테러리즘에 맞서 투쟁하겠다" 고 천명했다.

◇ 미궁 속 암살 배후〓유고 정부와 경찰은 불라토비치 장관 피습사건에 코소보 해방군이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고 정부의 미오드라그 포포비치 정보차관은 "불라토비치 피습은 테러리스트들의 소행" 이라며 "테러리스트는 코소보 해방군일 가능성이 크다" 고 언급했지만 정확한 증거는 대지 못했다.

지난달 아르칸이 총격으로 숨졌을 당시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유고 정부의 반인륜적 범죄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르칸을 제거하기 위한 유고 집권세력의 테러설▶지하 범죄조직의 보복살해설▶코소보측과 서방세력들의 전문킬러 고용설 등을 제기했었다.

그중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자신의 지난 과오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아르칸을 죽인 것" 이라는 분석이 유력했다. 유고 경찰은 아르칸이 암살된 지 1주일 만에 살해 용의자들을 체포해 이들이 지하범죄 조직과의 연계 혐의로 해고된 전직 경찰들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은 이같은 발표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불라토비치 암살사건도 영원히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야당측은 "유고에서는 해결되지 못한 살인사건이 5백여건에 이른다" 면서 "이번 사건도 진실이 규명되지 못할 것" 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 피살된 불라토비치〓유고연방내 몬테네그로 공화국 출신으로, 1992년 유고연방의 내무장관에 취임했고 94년 국방장관에 임명돼 지금까지 장관직을 유지해 왔다. 코소보 사태로 인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유고를 공습했을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공습 방어를 책임졌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91년 보스니아 내전 때는 유고 전범재판소에 의해 전범으로 기소된 바 있는 라도반 카라지치 등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들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밀로 주카노비치 대통령이 이끄는 몬테네그로 공화국의 친(親)서방 정부와는 갈등 관계였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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