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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럽 투어에서 확인한 한국의 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0호 16면

노키아(Nokia)는 휴대전화 시장의 ‘넘버1’이다. 핀란드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38%를 점유하고 있다. 한때는 휴대전화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요즘은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미국에선 모토로라의 거센 공격에 뒷걸음치더니 최근엔 세계 시장에서 삼성의 추격을 막아 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형국이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85>

지난주 제주에서 열린 유럽여자투어(LET) 골프대회를 바라보면서 노키아와 모토로라, 삼성의 경쟁 구도가 떠올랐다. 유럽과 미국, 한국의 여자골프 세력 판도가 휴대전화의 경쟁 구도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에 출전했던 덴마크의 베테랑 골퍼 이벤 티닝(35)과 이야기를 나눴다. 티닝은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대회를 치르고 왔는데 한국과 중국은 확연히 다르다. 중국에선 분위기가 다소 느슨했던 데 비해 한국은 선수들의 눈빛부터 다르다.”

정작 티닝 자신은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었다. 프로암 도중에도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캐디와 장난을 치며 연신 시시덕거렸다. 이런 모습들이 필자의 눈엔 낯설게 보였다. 티닝에게 유럽여자골프투어는 미국의 LPGA투어와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봤다. 티닝은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유럽은 유럽이고 미국은 미국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LPGA투어의 선수들은 골프 자체만을 위해 사는 것 같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유럽은 그렇지 않다. 선수들끼리 친하고 캐디들과도 가깝게 지낸다.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를 LPGA투어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아닌 게 아니라 클럽 하우스엔 유럽 선수들이 데리고 온 꼬마가 뛰어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선수들은 마치 이모라도 된 듯이 돌아가면서 이 어린이를 데리고 놀았다. 이번엔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한국 여자골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옆에 있던 베키 브루워튼(영국)이 대답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 나가 봤더니 한국 선수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연습을 하더라. 한국 선수들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넘쳐 흐른다. 한국 골프가 왜 강한지 이해가 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티닝과 브루워튼의 얼굴에는 골프의 본산지는 여전히 ‘유럽’이라는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겉으로는 ‘한국 선수 참 대단하다’고 치켜세웠지만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연습만 한다’는 말은 ‘오로지 골프밖에 모르는 한국 선수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들렸다.

3라운드에 걸친 이 대회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선수들끼리 우승을 다퉜다. 톱10에 든 유럽 선수는 두 명에 불과했다. 결국 ‘즐기면서 하는 골프’와 ‘운동에만 전념하는 골프’의 차이가 순위로 나타난 셈이었다.

티닝이나 브루워튼의 말은 틀리지 않다. 취미생활을 즐길 새도 없이 골프에만 몰두하는 한국 선수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한국 골프의 수준이 이미 유럽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옷차림과 장비는 물론 실력에서도 유럽은 이미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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