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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막사발을 좋아하는 한국적 감성의 소유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0호 31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만든 것들’.
조병수가 10년 이상 조금씩 고쳐 쓰고 있는 에세이 제목이다. 에세이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는 것의 이야기가 덧붙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는 언제나 노자와 고유섭을 인용한다. 청자보다는 백자, 그리고 백자보다는 막사발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가장 거칠고도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몬태나의 허름한 창고를 찬미한다. 많은 평자가 지적하듯 그에게는 소중한 원형이 있다. 그의 원형은 말과 그림만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그의 건축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본 건축가 조병수

조병수는 꾸준히 실험을 하는 건축가다. 그는 특히 재료가 갖는 가능성과 특별한 감성에 대한 실험을 누구보다도 집요하게 해왔다. 인장력을 갖고 있는 와이어의 속성을 탐구했으며, 철재·콘크리트·나무·흙 등 다른 재료들이 만나는 방법에 대해서 탐구한다. 그는 최근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작은 살림집’에서 벗어나 이제 미술관, 학교, 오피스, 대규모 주상복합으로 작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병수의 건축에 관심을 기울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성’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윗세대 건축가들은 비움, 없음, 마당 등의 주제로 한국적 공간의 맥을 만들고자 했다. 절제와 고졸한 미학을 견지하는 조병수는 가장 한국적인 감수성을 갖춘 중견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면서도 선배들과 다른 점은 이러한 감수성이 철저하게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을 구체적인 건축 작업으로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지역성과 보편성이라는 이원적인 개념의 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축의 현장을 만들고 있다. 서정적인 무위와 작가적 욕망, 머무르는 공간과 움직이는 공간, 단일한 오브제의 완결성과 여러 개가 집합된 관계. 한국 건축에서 오랫동안 되물었지만 담론과 작품에서 한계에 부닥쳤던 문제들을 그의 건축에서 새롭게 대면하게 된다. 조병수는 공간의 원형으로서 사과 상자에 대해 이야기할 뿐 아니라 원초적인 상자 공간을 반복해 만들었다. 최근에는 하늘만 보이는 땅속에 파묻힌 집을 지었다. 말과 건축이 일치해서 그의 작업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것이다. 그의 말은 변하지 않아도 그의 건축에서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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