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높아진 입국 장벽 때문에 미국이 '기업 하기 힘든 나라'가 돼가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부쩍 강화된 미국의 비자 발급 기준 때문에 기업들이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8일 테러 3주년 특집 기사로 보도했다.

IHT는 "기업들은 9.11 직후 외국계 우수 인력들이 테러를 겁내 미국을 떠날까 걱정했다. 그러나 3년이 흐른 지금은 이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취업 비자 발급이 늦어지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전했다. 지나친 보안이 기업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까다로워진 비자 발급=구비 서류는 물론 인터뷰.신원 조회 등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미 정부는 9.11 테러 이후 이슬람권 26개 국가를 특별 관리하고 있다. 대상국의 18~45세 남성은 신원 조회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미 정부에 의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중국.인도 등 일부 비(非)이슬람권 국가들도 '기술 경계 국가'로 분류돼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 이들 국가의 경우 비자 발급과 관련된 조회 작업에만 보통 30~60일 걸린다. 비자를 받는 데 필요한 대사관 인터뷰 날짜를 잡기도 힘들어져 비자 발급기간이 한층 길어졌다.

프랑스.영국에서 미국 비자를 받을 경우 31~41일 정도 걸리고 있다. 일본.중국에서도 만만치 않아 21~24일가량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신규 비자 발급에 4~5개월, 비자 연장에 8주 정도 걸리는 블랙리스트 국가 출신에 비하면 빠른 편이다.

◆미국 기업들의 고충=미국 컨설팅회사인 산탄젤로 그룹이 141개 미국 기업을 조사한 결과 51%가 '1년 전에 비해 비자 발급이 어려워졌다'고 응답했다. 또 30%가 비자 문제 때문에 사업 파트너를 초청할 수 없었다. 이 밖에 500인 이상을 고용한 대기업의 79%가 미 정부의 비자 발급 업무에 불만을 나타냈다. 발급 기준이 까다로워져 생기는 문제점으로 '외국인 직원 고용 어려움'(42%),'사업 연기'(38%) 등을 꼽았다. "미국은 중국.일본에 이어 세번째로'직원들을 재배치하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고 IHT는 보도했다. 상당수 기업은 이민국에 1000달러의 '급행료'를 내고 '프리미엄급 처리(premium processing)'를 신청하는 실정이다. IHT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엔 1000달러가 푼돈일 수 있지만 계속 쌓이면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탄젤로 그룹은 비자 발급 요건 강화로 2002년 7월부터 올 3월까지 미 기업들이 260억 달러(약 30조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미 정부는 비자 발급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어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지난 7월 16일부터는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도 비자가 만료되면 무조건 출신국으로 귀국하도록 관련 규정이 고쳐졌다. 새로 채택된 미국 비자에는 지문 등 생체정보를 수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IHT는 미 변호사를 인용,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 생산성 하락, 시간 낭비로 인한 손실에다 외국인 근로자의 항공료.체재비 등의 부담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