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다보스에 비친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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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의 금융위기는 끝났습니다. "

지난 28일 스위스의 다보스 시내 센트럴 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 설명회에서 한국의 경제위기 종식을 공개 천명하는 이기호(李起浩)청와대 경제수석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정확히 2년 전인 1998년 1월, 똑같은 자리에는 李수석 대신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가 서 있었다.

대통령 당선자 경제고문이던 柳지사는 한국정부 대표 자격으로 세계 정치.경제계 지도자들이 모이는 다보스에 찾아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을 도와달라" 는 柳지사의 호소는 잔뜩 풀이 죽어 있었고, 외국 기업들의 반응도 냉랭했다.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李수석의 한국 경제 설명회엔 예상보다 훨씬 많은 80여명의 내로라 하는 세계 경제인들이 참석해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미 제너럴 모터스(GM)와 프랑스 르노자동차에서는 고위 관계자가 참석했다.

정부측 인사들은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를 대변하는 것" 이라고 좋아했다.

李수석의 연설은 경제위기 극복을 세계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민들은 지식과 정보화로 요약되는 21세기에 꼭 필요한 높은 교육 수준과 정보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李수석은 디지털 혁명이 국제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어 케네스 커티스 도이체방크 집행이사가 연설했다.

그는 "한국은 훨씬 경쟁력이 강화된 모습으로 26개월 만에 경제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고 평가하고 "자신감을 바탕으로 개방 경제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고 치켜세웠다.

다보스 포럼에는 국내 민간 그룹에서도 10여명이 참석해 李수석의 연설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2년 전엔 柳지사와 김우중(金宇中)대우그룹 회장이 외국인들을 앞에 놓고 무너진 한국경제의 책임론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였었다.

'빅딜' 과 재벌그룹 부실채권을 둘러싸고 갑론을박(甲論乙駁)했던 두 사람은 이제 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핵심에서 밀려나 있다.

2년 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이날의 한국경제 설명회장 분위기는 오직 강자만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대우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다보스에서]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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