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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바란다] "시민운동 나아갈 방향 짚어줬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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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일보 독자위원회 1월 모임이 지난 24일 오후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렸다.

위원장인 신구식(申坵植)무역협회 차장의 사회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에서 여섯 독자위원들은 2000년 첫 달의 본지 보도내용과 편집방향을 돌아보며 비판과 대안을 진솔하게 제시했다.

이 자리에는 장성효(張星孝)편집국장 대리와 이덕녕(李德寧)논설위원, 김두우(金斗宇)정치부 차장, 민병관(閔丙寬)산업부 차장, 김석기(金石基)전국부 차장, 조현욱(趙顯旭)문화부 차장이 참석했다.

▶김창남(金昌南)성공회대 교수〓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다. 중앙일보는 처음에는 다소 조심하다가 요즘엔 여론의 전반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변화가 짚인다. 긍정적으로 간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18일자에 사내 필자가 쓴 칼럼은 수긍하기 힘들었다. 이번 시민운동이 위법이며 무조건 법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나 '애꿎은 국회의원' 같은 표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일부 국회의원을 겨냥한 낙선운동에 대해 근본적인 반감을 드러내면서 정치권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글이라고 본다.

21일자 사설은 "시민운동을 막을 수는 없다" 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다뤘는데, 대통령의 법의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악법도 법이라는 식의 단순한 시각으로 이번 사태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탈북자 송환 문제를 보도하면서 정부의 뒤늦은 대응과 외교전략만 비판하고 일부 언론의 안보상업주의는 거론하지 않은 것도 아쉬웠다.

24일자 사설 '이헌재 장관 너무 나간다' 는 '재경부 장관이 전경련에 관해 발언하는 것은 곧 관치주의' 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옥선(鄭玉仙)주부〓1일자 새해 특집 가운데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 인터뷰는 정보통신 기술을 많이 언급해, 정보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압력' 을 은연 중에 느꼈다.

그러나 이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안내하는 기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새 환경에 알맞은 윤리와 규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노력을 더 했으면 싶었다.

미성년자 매매춘 문제는 11일자 26면 '미성년 접대부 50만' '10대 여학생 원조교제'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뤘지만 대안 제시가 미흡했다.

묘사에 그친다면 10대와 일부 성인들의 모방심리만 자극할 우려가 있다.

중앙일보가 사명감을 갖고 경찰과 업주의 상납고리 등 관련 기사를 지속적으로 다루면 좋겠다.

재테크는 주부들의 관심이 많은 대목인데, 정보통신주가 유망하다고 보도하다가 5일 주가가 계속 하락하니까 "거품이었다" 고 방향을 1백80도 바꿨다.

이처럼 헷갈리는 상황에서 궁금증이 많았던 참에 25일자 특별대담 '벤처 신드롬 거품인가 아닌가' 는 반가운 기획이었다.

▶이정균(李貞均)일산 성신초등학교 교사〓결식아동을 다룬 기사에서 교육부 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는 안이한 자세가 눈에 띄었다.

결식아동이 늘어나는 것은 'IMF로 인한 저소득층 확대와 결손가정 증가' 때문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조사를 거쳐 나온 결론인지 무척 궁금했다.

교육부의 조사 방법을 한번쯤 검증해봤는지 의심스럽다.

중학생 학력을 보도한 기사 '수학은 쑥↑, 과학은 뚝↓' 에서도 과학 성적이 왜 그리 떨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빠졌다.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결성 파문을 다룬 24일자 스포츠면은 가입자 72명의 앞날과 외국 프로 스포츠의 사례 등을 제시해 이해하기 쉬웠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에 대해 독자들이 어느 입장에 서야 할지 모르는 때이기도 한 만큼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해 이처럼 일목요연한 기획물을 계속 실어 독자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해주면 좋겠다.

▶오양호(吳亮鎬)변호사〓낙천.낙선 운동의 보도는 상당히 객관적이었고 방향도 괜찮았다.

하지만 운동의 '적법성 여부' 에 치우쳤다는 느낌도 든다.

시민운동이 가져올 효과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낙선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중앙일보 나름대로 제시하는 바가 있어야 했다.

이헌재 재경장관의 발언에 대한 중앙의 입장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

재벌들의 '황제경영' 은 실제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장관이 잘못을 지적한 것에 대해 사설로 이를 부당하다고 비판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조정하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11일자 사설 '나눠먹기식 개각' 은 내각의 중립성이 필요함을 지적한 데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14일자의 개각 해설 기사에선 이같은 '적절한 우려' 가 자취를 감췄다.

3면 '개혁형 전문가 실전 배치' '철의 사나이서 디지털 사나이로' 등은 정부 발표 자료를 그대로 옮겨 실었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책임있는 언론의 모습이 아니다.

21일자 사설에서는 선거법 87조에 대한 대통령 발언을 두고 "법의식에 문제 있다" 고 지적하면서 한나라당 주장을 인용해 이를 '대중 선동주의' 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처신을 거세게 비판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혹 정치적 선입견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선거에 대한 국고보조 문제를 두고 중앙은 막연한 이미지성 기사로 일관했다.

외국의 선거 공영제'는 어떤지, 국고보조 확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등에 대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며 다루는 데 미흡했다.

중앙일보는 미성년자 매매춘 문제를 시리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연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14일 국회가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은 전혀 알리지 않았다.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시민단체 낙선운동에 묻혀 관심을 두지 않은 듯하다.

▶신구식 차장〓 '1백만명 밀레니엄 사면' 기사의 과장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용 선심 정책에 언론이 따라간 게 아닌가.

다른 신문은 '장기수 1천5백명' 이라고 차분히 다룬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한국인 총학생회장 당선을 '아이비 리그의 기적' 이라고 한 제목도 과장이다.

기사를 보면 전혀 기적같지 않았다.

다른 신문은 이 학생이 오랫동안 부회장으로 있다가 회장이 됐다고 전했다.

또 '전문대 인기 상한가' 라는 기사에서는 전문대가 정말 좋아져서 인기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이 많이 몰려 인기가 있다고 하는 건지 분석이 없었다.

현대그룹의 박세용 사장이 인천제철로 발령이 난 사실을 중앙은 주의깊게 다루지 않았다.

다른 신문들은 후속기사를 통해 이를 자세히 해설했다.

▶중앙일보〓우리는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의 정신과 취지를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다.

정치권 일부에서 이 운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도를 주시하면서 얽히고 설킨 여러 상황을 골고루 보도하고, 필요하면 견제도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필자의 기고는 중앙일보의 보도 방향과 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이 양해했으면 한다.

사설의 논조를 지적했는데, 시민단체 낙선운동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 나갔다' 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은 법이 존재하는 한 준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국가운영을 선과 악의 구도로 몰고 간다면 혼란이 온다.

이같은 시각에서 대통령의 법의식과 정치감각을 문제삼은 것이다.

대통령도 보스정치.지역감정 조장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항상 이를 경계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또 시민단체가 항상 선(善)일 수는 없다.

시민단체가 내세우는 기준이나 운동방식에 불합리한 게 있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정치권이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면서 객관적인 보도를 하겠다.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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