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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칼 포퍼 '우리는 20세기에서…'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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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로 유명한 철학자 칼 포퍼(1902-1994)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20세기의 대부분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사건인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을 가장 앞장서, 그리고 가장 정확히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의 비판정신과 철학은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포퍼가 아흔 살을 전후해 20세기를 정리하면서 남긴 말과 글을 묶은 '칼 포퍼-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원제 : Popper-The lesson of this century.생각의 나무.이상헌 옮김.1만원)라는 책은 21세기를 예언하고 비판하고 있다.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이라는 20세기의 악몽이 준 교훈을 되새기며 21세기를 제대로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책에는 포퍼가 이탈리아 언론인 지안카를로보세티와 가진 두 차례의 인터뷰 내용과 직접 쓴 에세이 두 편이 실려 있다.

포퍼의 20세기 비판은 그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됐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태계 포퍼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자로 맹활약 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나타난 역사적 실체는 스탈린식의 공산주의, 그리고 히틀러식의 파시즘이었다.

그는 이런 폭력을 피해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로 옮겨갔다가 2차 대전이 끝난 뒤 영국으로 돌아와 전체주의 공산체제 비판에 여생을 보냈다.

포퍼가 20세기의 적(敵),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을 공격한 방법론이자 기본철학은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 다.

이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며, 언제나 틀릴 수 있다' 는 가정 위에 서 있는 이론이다.

따라서 진리를 강요하기보다 오류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며, 이는 곧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의 과정이다.

토론과 비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가 '열린 사회(Open Society)' 이며, 그 반대가 전체주의 국가로 대표되는 '닫힌 사회(Closed Society)' 다.

닫힌 사회는 유토피아가 눈 앞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하나의 목표, 즉 유토피아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달려갈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비판적 합리주의의 시각에서 보자면 불완전한 인간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면 잘못된 것들을 비판하고 고쳐나가는 점진적 개혁이 더욱 확실한 길이다.

포퍼가 마르크스시즘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르크스의 '못가진 자에 대한 애정' 은 바람직한 휴머니즘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인이 되는 공산주의 사회를 유토피아, 즉 역사가 언젠가는 도달할 이상사회로 그린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예언한 이상사회는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국가, 예컨대 영국과 같은 나라가 '열린 사회' 였기 때문이다.

비판이 허용되고 그 결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개혁할 수 있었기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마르크스의 유토피아를 이루겠다던 공산주의 국가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닫힌 사회' 였기에 자기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가 21세기에도 중요한 것은 20세기를 통해 그의 이론이 올바른 것임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교훈은 곧 비판적 합리주의의 유용성이며, 포퍼가 21세기에 제안한 구체적 대안은 '법의 지배' 다.

법의 지배는 곧 민주주의이며, 약자에 대한 보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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