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시인의 별'로 이상문학상 받은 이인화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아이구, 이거…, 날벼락을 맞은 것 같군요. " 소설가 이인화(34.이화여대 국문학)교수는 '이상(李箱)문학상' 을 받게된 것을 '날벼락' 이라고 표현했다.

워낙 큰 상을 받은 감격에 내뱉은 말이라 하더라도 풍부한 어휘를 안고 사는 젊은 작가의 수상소감으로는 심상치 않다.

그가 '날벼락' 이라 표현할 정도로 이번 수상은 의외다. 1977년 상이 만들어진 이후 역대 수상작이 모두 '이상' 이라는 이름에 어울릴만한 섬세한 감정묘사가 돋보이는 순수문학 작품들이었는데, 이번 수상작인 단편소설 '시인의 별' (문학사상 1월호 게재)은 역사소설에 속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별' 은 몽골(원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말에 살았던 안현(安顯)이라는 불우한 지식인 얘기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원나라의 왕자에게 빼앗긴 뒤 아내를 찾아 중국과 몽골, 시베리아 대륙을 유랑하는 멀고 긴 여정이 짧은 소설에서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대륙을 샅샅이 뒤집어 마침내 아내를 찾았으나 몽고인 귀족부인이 된 아내는 함께 도망칠 것을 거부한다. 안현은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은 황야에 생매장 당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들짐승처럼 황야를 떠도는 전 인류의 통곡과 우수를 알레고리(우화)로 표현하기" 라고 말했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자료수집차 몽골을 네 차례나 드나들면서 알게된 몽골인의 하소연인 까닭. 사회주의가 망하고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린 몽골, 몽골인 남편은 돈 맛을 알고 바람 난 아내를 찾아 울란바토르의 나이트클럽을 뒤지고 다녔다.

소설가에게 그 남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 7백년전에 살았던 고려인과 다르지 않았다.

이교수는 7백년전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무대에 허구의 인물을 던져놓고 유목민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이교수는 역사를 무대로 삼지만 단순한 역사 이야기의 차원이 아니며, 이상문학상이 추구해온 '순수문학' 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상문학상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심사를 맡고 있는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은 "이인화교수는 아주 귀한 작업을 매우 진지하게 하고 있어 그의 작품을 택했다" 고 밝혔다.

최근 소설이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감정묘사와 신변얘기에 치중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가운데 '시인의 별' 은 시간.공간의 외연을 확대하는 문학 본연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귀하다' 는 평가다.

이위원장은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이상의 밀실(골방)문학과 이번 수상작의 흐름이 맞지않은 듯하지만 이상의 상상력 세계를 파고들면 대륙의 초원과도 만나는 것" 이라며 이인화와 이상의 일맥상통을 강조했다.

"역사소설을 계속 쓰겠다" 는 이교수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모델로 해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간의 길' 3부작에 이어 '혁명의 길' 4부작을 준비하고 있으며, 10년쯤 후에는 삼국지를 꼭 다시 쓰고싶다고 밝혔다.

이문열의 삼국지가 4.19세대의 정치사라면, 그의 삼국지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생활사가 될 것이란다.

문학사상은 1월말 '시인의 별' 과 추천우수작등을 묶어 단행본을 낼 예정이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