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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가짜학위로 교수 된 건 유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2006년 3월 “돈을 주고 러시아 음악대학에서 가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 및 강사 100여 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100여 명이란 숫자도 놀라웠지만 적발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국내 유수 음대 교수들이어서 음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검찰은 이들 가운데 20명에 대해 가짜 학위로 교수에 임용된 혐의(업무방해)와 가짜 학위를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록한 혐의(위계공무집행방해)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2월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짧은 기간에 학위를 취득했고 러시아 교수가 한국에 와서 가르치는 등 허술해 보이긴 해도 러시아 당국이 학위를 인정한 이상 가짜는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기소된 교수들은 “교수에게 생명과도 같은 명예가 손상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러시아 외교관을 몰아세우는 바람에 당시 우주인 후보 고산씨가 피해를 봤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5일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1, 2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러시아 예술학 박사 학위는 3~4년의 과정을 마치고 엄격한 논문 심사를 거쳐 국가의 최종 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교과부 장관 명의로 발급된다”며 “피고인들이 학위를 받은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는 비정규 2년 과정을 개설해 ‘증명서’를 발급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박사 학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러시아 박사 학위를 땄다고 대학에 제출해 교수로 임용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으로 함께 기소된 피아니스트 출신 도모씨는 서울 삼성동에 유학알선업체를 설립해 교수들로부터 학기당 400만~500만원씩을 받고 방학 동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레슨을 받게 해 줬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학위증을 발급하고 25억원 상당의 수익을 올린 혐의로 구속 기소됐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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