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덫에 걸린 통일영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1천년 동안 독일민족의 통합과 독일의 웅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세사람의 걸출한 지도자는 아마도 오토 대제(大帝)와 비스마르크, 그리고 헬무트 콜일 것이다.

작센(Sachsen)왕 오토1세는 962년 로마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19세기 초까지 면면히 계속되는 신성로마제국을 세웠다. 훗날 독일로 불리게 될 정치적인 실체가 그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비스마르크는 1871년 독일 통일의 큰 일을 해낸 프로이센의 재상(宰相)이다. 그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普佛)전쟁에서 연승해 오스트리아를 독일에서 축출하고, 나폴레옹3세의 프랑스로부터 유럽의 강자자리를 넘겨받았다.

그때까지의 유럽은 나폴레옹전쟁을 청산한 1814년의 빈체제 아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빈평화체제의 주축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신성(神聖)동맹이었다. 그신성동맹도 1854년의 크리미아전쟁으로 붕괴됐다.

비스마르크는 낡은 질서가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 오스트리아를 무력하게 만들고 30개 이상의 작은 왕국과 공국(公國)으로 난립해 있던 독일을 통일했다. 중요한 것은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의 원대한 비전에 맞춰 낡은 질서의 붕괴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말의 독일 통일도 헬무트 콜이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냉전체제가 무너지는 지각변동에서 통일의 기회를 정확히 읽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콜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얻은 통일의 '가능성' 을 실제 통일이라는 '현실' 로 발전시키는 데 탁월한 정치.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

그 결과 독일사람들의 한결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독일의 위상은 신성로마제국을 연상시킨다.

이런 위업을 달성한 통일의 영웅이 불법적인 정치자금 의혹에 휘말려 가장 성공한것 같이 보이던 정치생애를 불명예스럽게 마감해야 할 위기를 맞은 것은 남의 일이지만 유감스럽다.

콜은 25년간 기민당(CDU)총재, 그 가운데 16년간 총리를 지내면서 1998년부터 역산해 6년 동안 2백만마르크(약 13억원)의 정치헌금을 받아 적절하지 않게 쓴 사실을 시인했다. 기민당은 정치자금 보고서를 수정해 7백30만마르크를 국고에 반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콜을 슬프게 하는 것은 새해 들어 검찰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앞서 기민당 안에서 그를 배척하는 기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정치자금을 낸 기업을 밝히지 않은데 반발한 일부 당원들이 그의 정계은퇴를 요구한다.

그러나 기민당 안에는 당의 '가장 높은 아버지(□bervater)' 인 콜을 버릴 수 없다는 천륜파(天倫派)의 목소리도 건재해 기민당이 분열의 조짐까지 보인다.

베를린을 강타하고 있는 불법 정치자금 사건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과 부럽다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 한국에서는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드러난 전직 대통령들이 나라를 위해 신명(身命)을 바쳤노라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정치판에 끼어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독일에서는 수백만마르크 좀 넘는 정치자금 의혹으로 통일 영웅 죽이기가 진행될 조짐이다. 한국과 독일의 정치의 청렴도와 도덕성이 이렇게 다른가.

한국과 독일은 분단의 조건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은 우리들에게 21세기의 언젠가, 통일의 조건이 무르익을 때 한국 지도자가 취할 정책의 모델을 보여줬다. 정치자금의 덫에 걸려 허둥대는 통일의 스승을 우리는 정치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도 모셔야겠다.

김영희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