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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지어야 비싸게 팔린다 투자? 우리가 최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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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호 26면

금융위기 여파로 주춤했던 초고층 빌딩(마천루) 건설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상암·용산·잠실 세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가 재가동됐다. 건설사와 금융사의 체력 저하로 위축될 대로 위축됐던 개발금융, 즉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최근 재개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금융화에 따라 개발과 금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상암·용산·잠실서 다시 불붙은 마천루 경쟁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서울라이트타워는 추진사업체인 서울라이트타워자산관리가 지난달 16일 기공식을 했다. ‘기공’은 공사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는 ‘착공’과 비슷하지만 건축법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인부와 장비를 투입해 실제 공사를 하는 것이 착공이라면 기공은 단지 공사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건축심의와 건축허가 단계를 거쳐 내년 5월 본격적인 삽질을 시작하는 것이 서울라이트가 잡은 추진 일정이다.
 
서울라이트타워 지난달 기공식
서울라이트타워가 들어설 대지의 규모는 3만7280㎡(1만1277평). 사업비 3조3000억원을 투입해 지하 9층, 지상 133층 등 연면적 72만4675㎡의 건물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높이는 540m, 안테나를 포함하면 640m에 이른다. 공사 계획에 맞춰 2015년에 완공되면 다음 달 개장이 예상되는 아랍에미리트의 버즈두바이(818m, 160층)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건물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관계자는 “지질조사 결과 이 일대는 상암동(上岩洞)이라는 이름 그대로 암반이 무척 많은 지형”이라며 “지하층 굴착에만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사업성은 5년 내 완공하되 건물의 50% 정도는 완공 후 5년간 운영한 뒤 매각하는 것을 전제로 검토했다. 토지 매입 대금 중 1, 2차 중도금(840억원)은 주주사의 증자를 통해 마련한 뒤 14일 서울시에 납부할 예정이다.

서울라이트타워의 기공식은 디자인 설계가 확정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미국 SOM사가 설계한 빌딩 외형은 남산 봉수대의 기단부와 몸체의 곡선을 살리면서 봉수대의 연기와 불빛 모양 등 전체적으로 등대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언론사의 방송시설, 공연 레스토랑, 비즈니스 호텔, 고급 아파트, 오피스 시설도 갖춰진다. 한마디로 업무·숙박·주거·전시·상업·공공·문화시설을 아우른 수직 복합화 건물, 이른바 ‘수직 도시’다.

서울라이트타워자산관리는 올 3월 서울 랜드마크 컨소시엄이 빌딩 건립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다. 컨소시엄에는 한국교직원공제회와 대우건설·대림산업, 그리고 산업·하나·기업·우리은행과 농협중앙회 등 26곳이 참여하고 있다. 관계자는 “몰락한 리먼 브러더스 등 외국사가 참여하려다 안 됐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자금 조달 여건이 좋아져 프로젝트파이낸싱을 연 7.9% 이내 금리로 하는 방안을 금융사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용산, 땅 대금 납부 문제 해결돼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복병이었던 토지대금 납부 문제가 7개월 만에 해결됨에 따라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사업의 최대 주주(25%)이자 토지 매각자인 한국철도공사는 지난달 27일 땅값 분납 기간을 5년에서 최대 7년으로 연장해 줬다. 드림허브 측은 당초 계획한 2011년 착공,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시행자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는 그동안 밀린 2차분 땅값과 3차분 계약금 6400억원을 이달 말까지 납부할 예정이다. 드림허브는 연말까지 서울시로부터 도시개발 구역지정을 받고, 내년 초 마스터플랜을 확정할 계획이다. 관계자는 “금융권과 합의가 거의 이뤄진 만큼 자금 조달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사업비는 28조원이다. 드림허브는 2011년 공사 착공과 함께 아파트, 오피스 빌딩 등 건물을 분양하면 공사비의 상당부분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국내외 기업으로부터 건물을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단순히 초고층 빌딩 하나만 짓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연면적만 317만㎡(96만 평)에 달한다. 초고층 타워를 비롯, 국제여객터미널과 30개가 넘는 대형 오피스 빌딩이 잇따라 건설된다. 특급호텔과 쇼핑몰, 주상복합 아파트와 다양한 문화시설도 함께 들어간다.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나 영국 런던의 ‘카나리워프’보다 나은 ‘도시 안의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 드림허브의 꿈이다.
 
제2롯데월드 설계 변경, 사업성 공방
서울 송파구 잠실동 제2롯데월드 타워(123층·555m) 건설도 최근 설계 및 디자인 변경에 이어 지난달 주민 설명회 등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제2롯데월드는 8만7182㎡(2만6550평) 부지에 오피스·호텔(7성급)·백화점·공연시설이 총망라되는 초대형 복합단지다. 저층 8개 동에는 명품 백화점, 생활용품 전문관, 패션 전문관, 공연장 등이 배치된다.

롯데가 층수를 112층에서 123층으로 바꾼 것은 ‘112’라는 숫자가 범죄신고 전화번호와 같기 때문이라는 풍문이 있었다. 그러나 롯데 관계자는 “112보다는 123이 암기하기 쉽고 상징성도 더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자비도 당초 1조5000억원에서 2조5000억원 이상으로 늘려 잡았다. 롯데는 내년 2월 착공 목표로 서울시 등과 협의 중이다. 초고층 빌딩의 외관은 첨성대 모양에서 곡선을 살린 원추형 디자인으로 변경했다. 롯데 관계자는 “교통개선대책 심의, 합동 심의를 연내 마치면 내년 2월 착공에 들어가 2014년 6월 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 측은 공개적으로 상암동 초고층의 경우 사업성이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기준 롯데물산 사장은 올 2월 국회 국방위원회 공청회에서 “잠실 말고 적합한 곳은 상암과 용산 정도인데 상암은 사업성이 없다”며 “(잠실에 짓더라도) 초고층은 20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상암동의 서울라이트 관계자는 “사업성이 없다면 26개 투자자가 왜 뛰어들었겠느냐”며 “김포공항, 인천공항과 모두 가깝고 서울시가 의지를 갖고 개발하는 디지털미디어센터(DMC) 안에 자리 잡고 있어 장기 수요도 받쳐주는 곳”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공항 활주로까지 변경하며 짓는 잠실의 초고층은 완공 전이나 후에도 안전성 공방이 끊이질 않을 것”이라며 “안전이 생명인 초고층 빌딩에 안전성 논란이 제기된다는 것 자체가 악재 중의 악재”라고 주장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시행사는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는 차원이므로 초고층 빌딩 중심의 상암·잠실 계획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드림허브 김병주 팀장은 “다른 초고층과 높이 경쟁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으며 함께 거론되는 것도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업성 논란은 건축비가 많이 든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비싼 건축비는 구조체 자체가 커지고 기계·전기 설비가 중복 설치된 데 따른 것이다. 서울라이트의 경우 3.3㎡(1평)당 850만~1100만원의 건축비가 들어간다. 일반 아파트의 건축비가 350만~450만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이다. 고려대 김상대 교수(세계초고층학회장)는 “설계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초고층의 건축비가 많이 드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완공 후 유지관리 비용도 많이 든다. 이에 따라 분양가뿐 아니라 임대료와 관리비도 덩달아 올라간다. 초고층을 짓는 입장에선 고급 수요층의 유치 여부에 성패가 달렸다는 얘기다. 서울라이트 염갑진 개발본부장은 “홍콩의 호텔 자본 등 외국계 투자자의 자금을 유치하고 각국 대사관의 영빈관, 외국인 장기투숙자 시설 등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초고층 부지보다 상대적으로 토지 단가가 저렴해 운신의 폭이 크다”고 덧붙였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월드와 연계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강남에 풍부한 고급 수요를 끌어들이면 사업성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드림허브 김병주 팀장은 “초고층 건물 하나만 본다면 사업성을 의심할 수 있으나 역세권 개발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커서 다른 초고층과 비교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종웅 DTZ코리아 대표는 “자체 자금으로 짓는 초고층이 차입에 의존하는 초고층보다 실패할 확률이 낮다”며 “초고층이 한꺼번에 완공되면 오피스 시장은 일시적으로 공급 과잉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초고층엔 호화 아파트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고급 수요층을 유치하는 데는 주거시설만 한 게 없다. 부산 지역의 해운대관광리조트(117층)·부산롯데월드(108층)·WBC(월드비즈니스센터·100층)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주거시설 설치를 위한 설계 변경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부산롯데월드 관계자는 “초고층 빌딩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성을 개선할 수 있는 주거시설 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피스는 3.3㎡당 2500만원 이상 받기가 쉽지 않다. 반면 주거시설은 4000만원 이상에 분양된 적도 있다. 서울라이트의 경우 주거아파트로 계획된 296가구를 299가구로 3가구 늘릴 가능성이 크다. 모두 231㎡(70평) 이상의 대형 평형 아파트로만 구성돼 있다. 분양가는 분양가상한제가 풀릴 것을 전제로 3.3㎡에 4400만원 이상으로 책정돼 있다. 업계에서는 분양 성공 가능성을 반반으로 본다. 김성혜 새싹공인중개 대표는 “건축비가 많이 드는 초고층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주변 아파트 시세에 비해 매우 높은 분양가”라며 “40억원 이상의 아파트 분양은 뚝섬 등에서 실패했고 한남동 등에선 성공한 적이 있는 만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에는 다양한 유형의 주상복합이 들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 사업 초기 단계여서 분양가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잠실 롯데의 초고층은 주거시설을 배치하지 않을 방침이다. 분양하기 쉬운 주거시설이 아니더라도 공간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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