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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DJ당, 이회창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나라 정당의 평균수명은 5년도 채 안된다. 쿠데타나 정변 탓도 있지만 선거때마다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정희(朴正熙)장기집권이 무너진 후 대통령 임기가 5년단임으로 규정되자 정당수명도 덩달아 짧아졌다.

전두환(全斗煥)씨가 집권용으로 만든 민정당은 노태우(盧泰愚)대통령 시절 3당합당을 통해 민자당으로 탈바꿈한다.

김영삼(金泳三)씨가 후보가 되면서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고치고 이 당은 한나라당으로 개명해 이회창(李會昌)씨를 후보로 내세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3金시절 3金은 87년 대선에서부터 여러 차례 대전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을 후보로 내세운 정당의 이름은 매번 달랐다. 결국 우리네 정당은 선거용에 불과하고 대통령 또는 대통령후보 한사람의 개인소유물처럼 이용됐다. 그러니 당내 경쟁이 있을 수 없고 '오너' 가 사라지면 정당도 사라진다.

이런 임시방편의 단명(短命)정당들이 무슨 장기(長期)비전을 말할 수 있겠는가. 87년에도, 92년에도, 그리고 97년에도 각 정당들은 국가의 백년대계에 관한 수많은 장기비전과 정책을 내걸었다.그런데 그 정책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정당이 없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정당의 이름으로 제시했던 국가운영의 청사진과 비전과 정책들은 입발림.눈속임에 불과하고 그것을 떠들어대던 정치인들은 국민을 눈뜬 채로 속여먹은 것밖에 안된다.

그런데 또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신장개업이 시작되고 있다. 연초에 여러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무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파(無黨派)가 40~50% 정도를 차지한다.

기존 의원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거부감이 팽배해 있다. 그러니 정치지망생들은 옳다구나 하고 너도 나도 '신인' 을 자처하고 정당들은 저마다 '신당' 이니, '제2창당' 이니 하고 화장을 고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새로울 것인지, 얼마나 변화할 것인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 영입한다는 인물들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정치개혁이니, 당체질 개선이니 나발불면서 정당개편 때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끌어넣다보니 이제는 인적 자원도 다 동이 난 모양이다.

더군다나 지지기반을 보면 포장만 달라졌을 뿐 그 정당이 그 정당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지지율이 엇비슷한데 호남권에서는 민주신당이 70% 가까이, 영남권에서는 한나라당이 40~50% 가깝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무늬를 달리했는데도 여전히 지역당이요, 아무개의 당이다. 새천년민주신당은 그저 DJ당이라 불리고 자민련은 JP의 당이다.

한나라당도 1인체제로 역행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념에서의 동질성도, 정책에서의 일관성도 없이 그저 영남지역의 반DJ 정서와 이회창 총재의 1천만 득표에 기대어 왔다.

이제는 총선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이회창당' 을 겨냥하겠단다. 계파는 인정되지 않고 李총재에 대한 충성도가 공천의 제1기준이라는 말이 나돈다. 경쟁배제의 오너체제는 또 하나의 구식 3金정당꼴이다.

이 정당들은 또 얼마나 갈 것인가.이번 총선이 지나면, 또는 2003년 대선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뜨내기 정당신세가 안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이 정당들은 아무리 겉을 새단장 해도 속사정을 들어보면 과거의 포말 정당들과 똑같은 정치행태들이 자행되고 있다. 당 지도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들의 정치적 재산권인 공천지분뿐이다.

당의 노선.정책은 그들에겐 상관이 없다. 이런 정당들이 무슨 정치개혁을 이루겠는가.

민주신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간에 이번에는 최소한 총선이 끝나도, 그리고 2003년의 대통령선거 후에도 존립할 수 있으려면 개인색깔부터 먼저 탈색(脫色)해야 한다. DJ의 당적이탈이 진지하게 검토돼야 하며 다양한 당내소리를 보장할 체제가 필요하다.

조직책들에게 '임명장' 이나 수여하고 당권에 대한 경쟁이 봉쇄된 채 공천지분다툼과 같은 낡은 작태들만 나타난다면 아마도 민심은 전혀 새로운 정치개혁 시도들에 눈을 돌릴 것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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