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앞다퉈 '벤처 유치원' 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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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경제단체와 기업들이 '벤처 유치원' 사업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될 성부른 업체에 돈을 대는 차원을 넘어 아예 '보육' 시설을 만들어 창업자들을 걸음마 단계에서부터 키우겠다는 것이다.

예비 창업자나 설립된 지 1년 이하의 신생업체 가운데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갖고 있는 곳은 서로 모셔 가겠다고 할 정도다.

◇ 민간 창업보육센터 설립 붐〓벤처기업협회는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삼성동 메디슨벤처타워 별관에 3개층 6백평 규모의 서울벤처인큐베이터를 열었다.

벤처기업협회장인 이민화(李珉和)메디슨 회장이 강남의 금싸라기 사무공간을 아주 싸게 임대해줬다. 덕분에 16개 입주회사들은 입주금 1백만원과 실비 사용료만 내고 사무실을 쓰고 있다.

데이콤의 자회사인 데이콤인터내셔널도 지난해 11월 서울 논현동 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 빌딩에 5백평 규모의 인터넷 벤처 보육센터 IVC를 열었다. 현재 4개인 입주업체를 연내에 1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밖에 대양이앤씨.라이코스 코리아.E캐피탈.테라.E코퍼레이션 등 중소.벤처업체들도 창업보육센터를 운영중이거나 만들 계획이다. 대기업 중에서도 지방에 공과대학을 둔 포항제철과 LG 등은 이미 창업보육에 나섰다.

서울벤처인큐베이터 관계자는 "부담없이 업무공간을 쓸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회원사의 기술자문과 재무.법무 등 10개 분야 전문가집단의 경영자문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 왜 직접 나서나〓지분출자.전환사채 인수 같은 벤처투자를 통해 과실 챙기기에 열심이던 업체들이 해당 업체를 직접 키우는 사업에 나선 것은 그만큼 장기적 이득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최길수 벤처창업팀장은 "창업.신기술 보육센터는 정부.공공기관이 정책적으로 지원해왔으나 최근 대기업.중소업체와 창업투자회사 스스로 유망 벤처를 발굴.육성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인큐베이터 운영 업체들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유망 협력업체를 확보할 수 있고, 장차 자사 주력 분야와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거나 사업다각화를 위한 신규 아이템 원천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양이앤씨는 첨단 학습기기 엠씨스퀘어를 이을 차세대 사업을 물색 중이다. 그래서 주문형 반도체 등 신사업 진출에 대비, 관련 유망벤처를 적극 키우기 위해 연내 벤처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데이콤인터내셔널도 데이콤의 미래사업인 인터넷 분야 협력업체를 키울 계획이다. 윤종채 기획부장은 "직접 보육한 벤처가 잘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이득" 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선 벤처보육사업이 이미 민간 비즈니스로 정착됐다. 미국의 경우 CMGI.아이디어 랩 등 벤처전문 보육기업들이 성업 중이고, IBM.비자 등 다국적 기업들도 막강한 자금.조직력을 활용해 창업보육 사업에 가세하고 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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