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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질주!IT혁명] 4. 제3·제4의 금융혁명-사이버금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정보통신(IT)혁명은 금융산업에도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과 창구 위주로 진행되던 금융거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무인.무점포 거래로 급속히 전환되는 중이다.

은행들은 PC뱅킹.폰뱅킹에 이어 지난해 인터넷뱅킹과 모빌뱅킹(휴대폰을 이용한 은행거래)을 앞다퉈 선보였다.

이제 예금조회 및 이체.대출신청 등 웬만한 은행업무는 유.무선으로 인터넷만 접속하면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증권 투자자들도 객장을 찾기보다는 사이버 거래를 더욱 선호하는 추세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이 시장 규모는 무려 5백46조원(11월말 현재, 주가지수 선물.옵션 포함)으로 전체 거래의 37% 수준. 이는 33% 가량인 미국의 비율을 넘어서서 세계 최고에 달하는 수치다.

증권사들은 이에 따라 사이버 전용지점 구축에 이어 아예 지점망이 없는 사이버 증권사 설립을 구상할 정도다. 국내 보험사들 역시 지난해 자동차보험.생명보험 상품 등을 인터넷으로 판매하기 시작, 사이버금융 시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더 큰 금융혁명은 금융기관 간에 둘러쳐져 있던 장벽 허물기다. 사이버 공간에선 종래의 은행.증권.보험의 칸막이가 무의미하기 때문. 삼성금융연구소 정기영 소장은 "정보통신 기술의 도입으로 금융산업도 '장치(裝置)산업화' 하고 있다" 며 "초기 비용이 막대하지만 일단 장치를 구축하고 난 뒤엔 추가 업무에 따른 한계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겸업화가 촉진될 수 밖에 없다" 고 진단하고 있다.

예컨대 은행들이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데는 큰 돈이 들지만 이 시스템을 활용해 증권.보험업무를 대행해주는데는 추가 비용이 없다시피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상당수 은행들은 보험회사와 제휴, ▶은행창구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은행과 보험의 특징을 함께 갖춘 신상품을 개발하며 ▶영업망을 공유하는 등 '방카슈랑스' (은행과 보험의 합성어)시대를 펼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민은행은 최근 동부화재와 협약을 맺고 보험상품 판매에 합의했으며 주택은행도 ING생명의 지분 취득을 계기로 법상 가능한 모든 보험업무를 취급한다는 계획. 하나은행의 김승유(金勝猷)행장은 "고객의 수요에 부합하는 상품을 골라 판다는 게 기본 방침" 이라면서 "국내 보험사는 물론 유력 외국 보험사들의 상품도 선보일 계획" 이라고 밝혔다.

은행-증권간 제휴도 활발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한(신한증권).하나(하나증권).조흥(세종증권).주택(교보.대신.동부.동원증권).한빛(한빛증권)은행 등이 증권계좌 개설 업무를 개시했다.

은행에서 연계계좌를 트면 고객이 굳이 증권사에 나가지 않고서도 은행계좌를 통해 매매대금을 증권계좌로 이체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 것.

여기다가 올해부턴 전국 편의점에 인터넷 겸용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 설치돼 각종 은행업무는 물론 보험 가입 및 보험료 납부, 증권거래까지 가능해진다.

첨단 ATM 1대가 '원스톱 사이버 금융기관' 의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현재 한빛은행이 LG유통.보광훼미리마트 1천여개 점포에, 하나은행이 세븐일레븐 2백60개 점포에 ATM을 설치하기로 계약을 맺은 상태다.

정부도 급속한 시장의 변화에 맞춰 입장을 바꾸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이 오는 17일부터 금융기관별 핵심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업무에 대해 진입제한을 철폐할 방침을 밝힌 것. 그러나 이로 인해 국내 금융시장은 해외 자본의 흐름과 환율변화에 적나라하게 노출돼 더 취약해질 우려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이성조 과장은 "현재로선 사이버금융에 관한 법규나 감독규정이 없지만 우선 인터넷 뱅킹과 ATM을 통한 자금이체 관련 약관을 올해 안으로 제정하는 등 고객보호와 해외 위험 노출 대비책을 세울 계획" 이라고 밝혔다.

신예리.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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