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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그래 미련없이 지거라-국토의 서남쪽 땅끝마을에서 이문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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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지는 해를 보기 위해 남도로 간다. 세기말을, 한 즈믄 해(千年)를 역사속으로 장송(葬送)하기 위해 남녘 땅 끄트머리로 떠난다.

아무 이룬 바 없이 나이만 먹은 문사(文士)에게야 조롱말 한 필에 술 한 표주박도 과하겠으나 세월에 인정이 남아 무쏘 한 대에 사진기자 한 사람이 동행이요, 전대(錢袋)마저 두둑하다.

느즈막한 점심을 때우고 한밭(大田)을 지나 남도길을 달린다. 고속도로변이야 어디나 비슷비슷하지만 정읍으로 빠지면서 남도길의 정취가 난다.

구비구비 험한 산자락을 돌고 그것도 힘들면 컴컴한 터널을 지나야하는 내 고향 경상도의 길에 비해, 사통팔달 훤한 들판에 나고 싶은 대로 난 길을 보며 느끼는 기분을 남도길의 정취라 부른다.

바쁠 것 없는 길이라 군데군데 실없는 감회를 쫓다 보니 첫날을 묵을 선운사(禪雲寺)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어둠이 깔렸다.

동백꽃도 아니 보이고, 주막집 작부의 육자배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즈넉한 사하촌(寺下村)에 차를 멈추자 주막집 방우 대신 '산새도' 호텔 프론트를 지키던 단정한 청년이 반겨 맞는다.

내 일찍 이 땅을 향해 바이 정을 보낸 적이 없건만 내게 쏟는 이 정은 어디서 솟은 건가. 나를 보아 숙박이 무료란다. 그 정을 못이겨 취하도록 마셨다.

날 들자 일어나 선운사로 오른다. 첩첩산중에 기암절벽을 기어 오르지 않으면 다행인 경상도의 사찰들에 익숙한 눈에 선운사의 인상은 유별날 수 밖에 없다. 사방 넉넉한 평지에 고목 숲이요, 두르고 앉은 산도 순해 보인다.

백제 고찰이어선지 한때 삼천 대중(大衆)이 수도했다는 기록이 믿기지 않을 만큼 크지 않은 규모이나, 만세루(萬歲樓)가 있어 해인사 장경각(藏經閣)을 부러워하지 아니한다.

대웅전을 짓고 남은 자투리 나무들을 잇고 깁고 하여 지은 건물인데, 미당(서정주 시인)식으로 표현하자면 정말 정말 큰 대목도 보이지만 그 장난기도 보인다.

동안의 주지스님을 찾아 봤으나 불법 얘기는 대충 듣고 차 얘기를 길게 한다. 초의선사(草衣禪師)까지 들먹이며 삼십 년 다력(茶歷)을 은근히 내비치고 조르듯 경내 다원(茶園)으로 따라가 선운사에서 딴 차 맛을 본다.

다섯 번을 우려도 맛이 변치 않아 거듭거듭 차탄했더니 비매품인 '선운명다' (禪雲銘茶) 두 통을 내 놓으신다. 차 도둑이 따로 없다.

바다로 지는 해는 선운사 암자에서도 볼 수 있지만 땅끝을 고집해 해남으로 떠난다. 도중에 젊은 날의 졸작( '대륙의 한' )에서 도미다례(都彌多禮)란 옛 이름으로 써 먹은 강진을 지난다.

남달리 여겨야할 땅이나 지는 해가 재촉해 바닷가만 돌아 보기로 한다. 간척으로 길고 곧은 제방을 둘러 근초고왕(近肖古王)이 휩쓸었던 옛 포구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해남을 지나는데 하마 해가 뉘엿하다. 시가지를 들여다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땅 끝 마을로 내닫는다. 동지를 며칠 앞두지 않은 짧은 겨울 해에 일몰을 잡으려면 늦어도 다섯 시까지는 도착해야 하는데 시계바늘은 벌써 네 시를 가리킨다.

도중에 한곳에서 그곳 지리를 잘 아는 이의 안내를 받기로 되어 있어 남은 육십리가 만만치 않다. 사진기자의 조바심에 무소(무쏘)가 콧김이 허옇도록 달려 간다.

안내는 친절하고 자세하였다. 전망 좋은 바닷가 산중턱에 횟집을 열고 한량처럼 지내는 그 안내인은 일출과 일몰을 잘 볼 수 있는 지점들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찍은 사진까지 내 주었다.

거기서 남은 이십리도 별 탈 없이 달렸다. 그러하되 하늘이 돕지 않으니 어찌 하리오. 간신히 시간을 대어 땅끝 마을에 도착했지만 구름과 저녁 안개가 자우룩히 바다를 내리덮어 해지는 곳이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사진기자의 낙심천만해 하는 탄식에 운전을 해 온 관광공사 직원도 소태 씹는 표정이다. 일없다. 내 알고 왔느니. 본시 남녘 땅 끝에서 본다고 지는 해가 다르겠는가. 더 있느니. 구름과 안개가 마음의 눈까지야 가리겠는가.

저기 저 서녘 바다에 버얼겋게 지고 있는 것이 세기말의 해다. 한 즈믄 해를 역사의 어둠속으로 끌어내리는 거대한 추다.

세계와 인간의 곡절 많은 사연을 싣고 백년 천년을 쉬임없이 돌다가 이제는 지친 몸을 저 바다에 뉘려는 장엄한 시간의 표상이다.

미련 없이 지거라, 해여. 지난 한 세기 이 땅이 받았던 고통과 슬픔이여. 지난 즈믄 해 우리가 맛보았던 오욕이여. 품어왔던 한이여. 그리고 다시 떠 올라라. 자랑과 영광의 세기여. 번영과 자족의 새 즈믄 해여.

하지만 정작 그 해가 진 것은 완도 옴팍집(방석집)골방에서였다. 그날 밤 찍어야 할 사진을 못 찍게 된 사진기자와 대어봐도 소용없는 시간에 대기 위해 애매한 무소 등짝만 후려친 격이 된 운전기사와 궁색하게 마음의 눈까지 들먹여 지는 해는 봐야했던 문사는 완도에서도 몇 안 남은 옴팍집을 찾아 바가지를 옴팍 쓰며 대취했는데, 늙은 주모의 장구장단에 맞춰 부르는 키 큰 아가씨의 랩 구절이 잦아들 즈음 첨버덩, 하고 멀리 땅끝 마을 바닷가의 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 이문열

<협찬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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