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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아름답다] 레슬링 국가대표선수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병상에 계신 어머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 29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노인전문 요양원 상애원(원장 김희찬)을 찾은 올해 레슬링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54㎏이하급 금메달리스트 김우용(평창군청)은 치매 할머니들의 여윈 발을 쓰다듬으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3년전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 생각 때문이었다.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되면서 고향을 떠나 어머니의 병간호 한번 제대로 못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이기려 틈만 나면 매트에 뒹군 끝에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어머니 생각으로 아렸다.

김은 할머니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마치 어머니에게 못한 효도를 다하려는 듯. 김의 정성어린 손길이 느껴졌는지 10여명의 할머니들이 서로 발톱 손질을 해달라며 줄을 섰다.

이날 국가대표 레슬링선수단 40여명은 상애원을 위문했다. 국가대표 레슬링선수 전원이 복지시설을 위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 방대두(그레코로만형).김태우(자유형)감독도 함께 했다.

선수들은 올해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고 받은 포상금을 모아 성금과 선물을 마련, 할머니들에게 전달했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자유형 금메달리스트 박장순 코치는 치매 할아버지를 목욕시켜드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9월 아테네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손상필(주택공사).김인섭(삼성생명)도 거동이 불편한 치매노인들을 업고 다녔다.

세계 최고 레슬러들에게는 너무나 가벼운 할아버지.할머니였다. 선수들의 등에 업힌 할머니들은 "이렇게 든든한 어깨에 업혀보기는 처음" 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한쪽에서는 그레코로만형 같은 체급 라이벌 심권호와 하태연이 '봉사대결' 을 펼쳤다. 할아버지를 목욕시킨 뒤 새옷을 입히느라 진땀을 흘리던 심권호는 "선수들 뒤집기보다 더 힘들다" 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희찬 원장은 "운동하느라 힘들텐데 틈을 내 소외 노인들을 찾아준 선수단에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 고마워했다.

원주〓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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