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국립공원 밀렵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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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런 올무는 1t 트럭이 잡아당겨도 끊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힘 좋은 멧돼지가 걸려도 맥을 못추는 거지요. "

22일 오후 충남 공주 국립공원 계룡산내 갑사(甲寺)주변 야산. '밀렵 감시' 란 글씨가 적힌 점퍼를 입은 감시대원과 군인, 일반인 등 2백여명이 곳곳에 흩어져 장대로 숲속을 뒤지고 있다.

금강환경관리청과 국립공원 계룡산관리사무소 등이 실시한 '밀렵 도구 수거' 행사다.

눈이 남아 있는 계곡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20여년생 소나무 기둥에 묶고 옆가지에 걸쳐놓은 지름 30㎝ 정도의 올무가 발견됐다.

멧돼지와 노루 등 큰 짐승을 잡기 위한 이른바 '멧돼지' 올무였다.

사람이 가기는 어렵지만 동물들은 능히 다닐 수 있는 소로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얇은 철사로 만들어진 산토끼 잡이용 올무도 발견됐다.

이곳에서 50m 정도 올라가 나무 밑동에 매달린 굵은 철사줄을 따라 낙엽을 헤치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집게덫이 발견됐다.

충남.대전 밀렵감시단 최대규(崔大奎.46)대장은 "집게덫에 걸리면 너구리 같이 작은 동물은 물론 고라니처럼 큰 동물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며 "설사 도망간다 해도 다리가 제 구실을 할 수 없어 죽을 수 밖에 없다" 고 설명했다.

이어 위쪽에서 밀렵 도구를 찾던 군인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너구리가 있다. "

가보니 2년생쯤 돼 보이는 너구리 한 마리가 올무에 걸려 축 늘어져 있었다.

시간이 오래지난듯 몸은 말라 있고 다리 한쪽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집게덫에 끊긴 다리가 있었다.

먼저 집게덫에 걸리고 도망치다가 올무에 채인 것으로 추측됐다.

이날 수거된 밀렵 도구는 집게덫 50여개, 올무 1백여개, 뱀잡이용 그물 5백m 등이었다.

올무의 경우 설치한지 얼마 안된듯 대다수가 녹슨 흔적조차 없었다.

금강환경관리청 성원길(成元吉)자연환경과장은 "국립공원조차 야생동물의 안전한 서식처가 못된지 오래" 라며 "특히 전문 밀렵꾼들이 수렵 행위가 금지된 국립공원에 집중적으로 밀렵 도구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이처럼 밀렵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밀거래되는 야생동물의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야생 멧돼지는 1~2백만원을 호가하고, 쓸개가 한약재로 쓰이는 오소리는 70~80만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환경관리청은 내년 봄까지 한달에 한 차례 밀렵 도구 수거 행사를 실시하는 한편 주민과 등산객들에게 사람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는 밀렵 도구를 보는대로 제거해 줄 것을 당부했다.

공주〓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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