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인원 '속궁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과천 서울대공원에 가보면

기린과 워터벅

전혀 다른 종(種)인 둘이서

한우리 속에 사이좋게 산다

몇발짝 떨어진 곳

시베리아 호랑이와 아프리카 호랑이

같은 종인데도 쇠창살 사이에 두고

서로 으르렁대며 산다

앞에선 웃고

등 돌리면 이빨 가는

별종(?)인간들, 그래서

이세상 잠시도 조용할 날 없다

나와 너는!?

- 이인원(46) '속궁합'

옛날 30대의 서정주가 창경원 동물원에 가서 학이 서 있다가 날갯짓하는 것을 보고 시의 운율인가 하는 것을 말한 적이 있거니와 이제 과천동물원에 가서 잘 지내는 짐승 잘못 지내는 짐승으로 하여금 넌지시 사람 사이의 구제받을 길 없는 상잔(相殘)을 내보여준다.

너와 나는 이제 신학적 명제 아니라 사생결단의 그것이 되고 말았다.

고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