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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피 뽑고 데이트” … 신종 플루 아랑곳 않는 ‘헌혈 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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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구시 중구 ‘동성로 헌혈의 집’에서 대학생들이 헌혈을 하고 있다(사진 위). 이곳은 전국 127개 헌혈의 집 가운데 올 들어 헌혈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아래 사진은 컴퓨터 등이 비치된 대기실에서 학생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헌혈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프리랜서 공정식]

“같이 헌혈하자.” “그러면 좋겠는데 지난주에 했어.”

2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헌혈의 집’. 대입 준비생 이현구(22)씨와 여자 친구가 헌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데이트 약속 장소로 헌혈의 집을 택했다. 이씨는 “커피값을 따로 들이지 않고 좋은 일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헌혈의 집에는 20여 명의 헌혈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9개 헌혈대에는 빈자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헌혈자가 이어졌다. 대기실에는 대학생과 고교생이 인터넷을 하거나 음료수를 마시며 순서를 기다렸다.

‘대한민국 헌혈 1번지’로 불리는 동성로 헌혈의 집 모습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전국 127개 헌혈의 집 가운데 이곳이 헌혈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만9999명. 2위인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헌혈의 집의 2만9252명보다 747명 많았다.

헌혈의 집은 ‘대구의 명동’ 격인 동성로 입구 대로변에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9층짜리 건물의 2층을 임대해 지난해 1월 문을 열었다. 전체 면적 248㎡로 채혈코너·문진실·대기실로 나뉘어 있다. 헌혈자가 많다 보니 번호표를 뽑아 기다려야 한다. 하루 평균 99명, 휴일에는 최고 170명이 헌혈하기도 한다. 신종 플루가 급격하게 확산된 지난달 중순 이후에도 평일 하루 50~150명이 찾아 이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헌혈자가 많은 까닭은=동성로는 대구 최대의 번화가로 평일 10여만 명, 휴일에는 30만∼40여만 명이 몰린다. 이들의 대다수는 대학생과 고교생이다. 이에 착안, 대구경북혈액원은 학생들에게 ‘만남의 공간’을 제공하면 헌혈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지난해 1월 동성로에 헌혈의 집을 열었다. 대구 지역 7개 헌혈의 집 가운데 가장 시설이 좋고 면적도 넓게 꾸몄다.

실내 디자인을 세련되게 하고, 헌혈자에게 제공하는 커피·주스 등 음료와 과자도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대기실은 잘 꾸며진 카페를 연상시킨다. 빨강·주황·흰색의 전등이 이채롭다. 의자도 빨강·초록 등 색상이 다양하다. 창가 자리는 헌혈자들 사이에 명소로 꼽힌다. 음료수를 마시며 대형 유리창 너머로 도심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대학생 이미영(20)씨는 “분위기가 아늑해 친구들이 ‘동성로 카페’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대구경북혈액원의 한상우(53) 운영과장은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곳이란 입소문이 난 것이 주효했다”며 “헌혈자의 90% 이상이 학생”이라고 설명했다. 친구를 따라왔다가 헌혈에 동참하고, 또 다른 학생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헌혈을 자원봉사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작용했다. 대구보건대학은 11년째 ‘헌혈’을 주제로 가을축제를 열고 있다. 학생들은 동성로 헌혈의 집을 찾아 헌혈하며 참여 캠페인을 벌인다. 대구보건대학 박은규(45) 대외협력처장은 “처음엔 ‘헌혈 축제’라는 말에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이젠 축제 때마다 학생 1000명 이상이 헌혈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대구 지역 전체 헌혈자 중 대학생과 고교생의 비율은 58.7%. 서울(45.6%)·부산(52.5%) 등 다른 도시보다 높았다. 고교생 김진현(18)군은 “남과 자신을 동시에 도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헌혈”이라고 말했다. 동성로 헌혈의 집 남정숙(48) 책임간호사는 “어려운 이를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헌혈의 집=혈액관리법에 따라 개인 헌혈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단체 헌혈이 강제성을 띨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설치하기 시작했다. 대전역에 1982년 2월 처음 문을 열었으며 현재 전국에 127곳이 있다. 전체 헌혈량의 60%가량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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