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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5000년’러시아 첫 나들이, 20년 걸렸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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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피오트롭스키(왼쪽) 관장과 최광식 관장이 한국박물관 100주년을 기념해 청자 기와를 얹어 지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징물 ‘청자정’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얼마 전 초대형 콜라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UCC)이 순식간에 조회수 100만 건을 넘기며 화제가 됐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형상화한 가로 15.6m, 세로 9.6m 크기의 콜라주를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학생 67명이 열흘 밤낮 매달려 완성하는 모습이었다. 대한항공 후원으로 에르미타주에서 한국어 음성안내 서비스를 시작한 걸 기념해 열린 이벤트였다.

에르미타주는 흔히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 브리티시 뮤지엄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미하일 보리소비치 피오트롭스키(65) 에르미타주 박물관장이 3일 열리는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국제포럼’ 참석차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포럼에 앞서 지난 1일 최광식(56)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 국립박물관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한국의 교류가 최근 매우 활발합니다.

피오트롭스키: 우리 박물관에 한국인 관람객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만, 한국어 음성 안내 서비스가 더 많이 찾아오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대한항공 외에도 삼성이 우리 박물관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최신 기술을 접목시킨 18세기 시계 모형을 만들어 에르미타주의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문화작품을 만들어 기증했지요. 무엇보다 내년 6월부터 열릴 국립중앙박물관 유물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에르미타주에는 한국 유물이 없거든요. 중국이나 일본 특별전은 있었지만, 한국의 역사나 유물을 소개할 기회는 거의 없었어요.

최광식: 내년이 한·러 수교 20주년입니다. 수교를 맺은 직후인 1991년 에르미타주 유물을 한국에 가져와 ‘스키타이 문명전’을 열었어요. 그 뒤 우리 것을 에르미타주에서 전시하기로 했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국립박물관이 있던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92년부터 논쟁이 시작되면서 두 번이나 이사를 했거든요. 그 와중에 박물관이 제 기능을 못했던 겁니다. 수교 20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됐어요. 한국미술 5000년을 보여주는 유물 340여 점을 전시할 겁니다.

-한국 박물관은 올해가 개관 100주년이고, 에르미타주는 2014년에 250주년을 맞습니다.

피: 박물관은 한 나라의 역사를 품은 곳입니다. 박물관·도서관이 없다면 나라가 존재할 수 없고 정치나 경제도 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치가나 경제인들이 이 점을 간과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에르미타주 250주년 행사에선 박물관의 발전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박물관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그레이트 에르미타주’라는 컨셉트를 내세웁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에르미타주’라는 개념인데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최근 전시관을 열었 지요.

최: 우리도 관람객이 쉽게 오도록 올해 무료로 개방했고, 상설 전시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 역사 흐름을 볼 수 있게 개편했습니다. 전세계 박물관에 한국실이 60개 있는데 올해부터 중요한 곳을 정해 소프트웨어를 지원합니다. 가령 최근 브리티시 뮤지엄에 큐레이터를 파견해 한국실을 개편하도록 했습니다. 해외 유물을 빌려와 세계 문명전을 하고 있고요. 에르미타주가 주변의 다른 궁전들까지 박물관으로 편입했듯, 우리도 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뮤지엄 콤플렉스를 조성하려는 청사진을 갖고 있습니다.

피: 국립박물관의 가장 큰 역할은 물론 제 나라의 유물과 문화유산을 소장해 독창적인 문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하는 것이죠. 그런 소중한 유산을 널리 알려야 하고요. 타 문명의 유산과 유물을 소개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가령 빨간색이 어느 지역에선 생명일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선 죽음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죠. 정치와 경제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근저에 문화가 깔려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최: 동의합니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가 발전해야죠. 문화의 중심엔 박물관이 있고요. 국립박물관이 지금까지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문화 콘텐트의 보고이자 국가 브랜드의 상징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봐요. 내년 한·러 수교 20주년에서도 박물관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전시 기간에 맞춰 한국 무용과 음식 등 전통 문화예술 관련 부대 행사를 많이 마련할 겁니다.

피: 단순한 전시가 아닌, 한국 페스티벌이 되길 기대합니다.

정리=이경희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에르미타주 박물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국립박물관. ‘겨울궁전’을 중심으로 5개 건물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구성한다. 고대 스키타이족의 보물과 중앙아시아 유물부터 레오나르드 다 빈치·렘브란트·마티스 등의 작품까지 소장 유물만 300만 점에 달한다. 피오트롭스키 관장은 부친(1964~90)에 이어 92년부터 에르미타주 관장직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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