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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속도감 내는 미·중 ‘북한 급변사태’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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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현재까지 여러 가지 소식과 자료들을 종합하면 양측은 상호 비상대응계획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가 규정하는 급변사태의 개념 및 사태 진행 이후의 최종 단계(end state)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반도의 안정유지 방안과 핵물질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유출방지 및 대량 난민 관리 등의 문제들도 집중 거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핵물질의 역외 유출방지에 최우선을 두는 반면 중국은 대량 난민 발생을 우려해 국경 관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미·중 양국이 동북아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를 우리가 현실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다.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강대국 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며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가 자국의 국가이익은 물론 동북아질서의 안정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강대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스스로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 못지않게 위험한 것은 강대국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 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미·중 간의 논의는 우리로 하여금 변화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전략적 유용성과 역할공간을 얼마나 확장해 가고 있는지 돌아보도록 만든다.

이번 미·중 간의 북한 급변사태 논의는 우리에게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북한 급변사태 시 양국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상호협력의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대국들이 그들만의 전략적 합의에 기초한 한반도 ‘공동 관리’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힘이 직접 부딪치는 교차로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만일 한국이 북한 급변사태 논의에서 앞으로도 ‘전략 동맹국(미국)’과 ‘전략적 동반자(중국)’로부터 배제되거나 방관자적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면 통일을 비롯한 한반도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결국 미·중 간 북한 급변사태 논의는 우리로 하여금 ‘G2시대’ 도래에 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인식과 더불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주체적 대응을 모색하도록 촉구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외교적 성과 가운데 하나는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한·중·일 협력체제’를 궤도에 올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미·중 삼각 대화’ 실현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제기된다고 하겠다. 한·미·중 삼각대화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미·중 양국의 의중을 직접 파악하고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한 채 두 강대국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의 성격이 있다. 당장 그것의 실현이 어렵다면 먼저 당국 간 ‘한·미 전략대화’와 ‘한·중 전략대화’ 체제를 내실화한 뒤 민간전문가와 정부관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1.5트랙’ 방식의 한·미·중 삼각대화를 추진하도록 하자.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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