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별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8호 01면

이후락(사진) 전 중앙정보부장이 31일 별세했다. 85세. 이 전 부장은 이날 오전 11시45분 서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뇌종양과 노환이 겹쳐 숨졌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다.

DJ 납치사건의 진실 끝내 침묵

이 전 정보부장은 1924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났다. 46년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임관했다. 군에서는 육군본부 병참관 등을 지낸 후 61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5·16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으로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63년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비서실장이 되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6년 가까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후 주 일본 대사로 부임했다. 하지만 70년 1월 일본 대사로 간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박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으로 그를 다시 불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총지휘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72년 5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7·4 남북 공동 성명을 이끌어냈다.

73년 4월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사석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말한 것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중정부장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됐다. ‘윤필용 사건’ 후 DJ(김대중) 납치사건을 주도했다. 이후 정계를 물러났다 79년 제10대 국회의원이 되지만 80년 6월 신군부에 의해 고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 등과 함께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지목됐다.

이후 이 전 부장은 30년 가까이 외부와 접촉을 끊고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4남1녀다. 빈소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 마련됐다.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발인은 11월 2일 오전 8시30분이다. 02-440-8922.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