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럽 정치통합 ‘8년 마라톤’ 결승 테이프가 눈앞에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에 얀 피셔 체코 총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리며 입장하고 있다. [브뤼셀 AP=연합뉴스]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위한 8년간의 마라톤이 마침내 골인지점을 눈앞에 두게 됐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정치통합의 법적 토대인 리스본 조약(일명 EU 미니헌법)을 유일하게 비준하지 않은 체코의 대통령이 사실상 비준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BBC 등 외신은 EU의 다른 회원국들이 체코의 리스본 조약 예외 조항 첨부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면서 내년 1월 발효를 위한 마지막 걸림돌도 사라졌다고 29일 보도했다. 이로써 2002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유럽 미래 대표회의’가 유럽헌법 초안을 발표한 지 8년 만에 유럽헌법이 ‘미니 헌법’ 형태로 사실상 발효를 앞두게 됐다.

외신에 따르면 EU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리스본 조약 기본권 조항에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EU는 리스본 조약이 발효된 이후 체코에 예외를 인정하는 문구를 삽입하게 된다. 체코는 그동안 리스본 조약에 ‘국경에 상관없이 EU 시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는 조항이 있어 제2차 세계대전 후 체코에서 추방된 독일인의 후손들이 토지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예외 조치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얀 피셔 체코 총리는 정상회의 첫날 일정이 끝난 뒤 “최종 확정된 예외 인정 문구에 클라우스 대통령이 만족스러워했다”고 전했다. 클라우스 대통령은 유명한 유럽통합 반대주의자로 의회에서 리스본 조약이 통과됐음에도 최종 서명을 거부해왔다. 앞서 클라우스 대통령은 체코가 요구한 예외 조항 인정이 받아들여진다면 리스본 조약에 서명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의장국 대표로 정상회의를 주재한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스웨덴 총리는 “27개 회원국의 리스본 조약 발효를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반겼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도 그동안의 협상 기간을 ‘장애물 마라톤 경기’에 비유하면서 “오늘 밤 우리들은 마지막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했다”고 선언했다. 체코가 리스본 조약을 비준하면 EU는 내년 1월 발효를 목표로 EU 대통령과 외무장관 선출 등 주요 자리 구성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체코가 리스본 조약을 비준하는 데 있어 아직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하나 남아 있다고 BBC는 덧붙였다. 체코 헌법재판소가 다음 달 3일 리스본 조약에 대해 체코 헌법에 위배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놓고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피셔 체코 총리는 헌재가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릴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연내 체코가 리스본 조약을 비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EU 정상들은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 대한 EU의 대응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해 재정적으로 지원키로 합의했다. 

박경덕 기자

◆리스본 조약=유럽 정치통합의 법적 토대인 유럽헌법이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의해 거부되자 이를 대체해 만든 조약. EU 회원국 정상들이 2007년 12월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모여 서명했다. ‘EU 대통령’으로 불리는 2년6개월 임기의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EU 외무장관’ 격인 외교 총책임자를 신설하는 등 EU의 정치통합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아 ‘EU 미니헌법’이라 불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