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89.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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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3장 희망캐기 24

연륙교가 없었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이었던 안면도의 백사장 포구는 대낮부터 북새통이었다. 대하가 잡히고부터 안면읍내의 5일장보다 많은 장꾼들이 모여들기 예사였다.

그러나 대하가 잡히지 않았을때, 백사장 일대는 곱고 흰 모래톱이 바다와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에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작은 포구였다.

그러나 희귀 어종인 대하철이 되면, 거의 날마다 시끌벅적한 대하파시가 서곤 하였다. 새우가 강장강정에 탁월한 효험이 있고, 혈중 콜레스테톨수치를 떨어뜨리는 작용을 가진 타우린 성분도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지고부터 대하 수요는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대하철은 11월말로 마감되지만, 12월 초순까지는 포구까지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수요만은 얼추 맞춰 줄 수 있었다. 외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무턱대고 왕새우만을 찾게 마련이지만, 새우를 바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작은 것을 골라 잡는다. 암놈보다는 노란 빛깔인 수놈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방극섭과 승희가 포구에 당도한 시각은 마침 조업을 나갔던 새우잡이 배들이 포구로 돌아오는 오후 3시 쯤이었다. 포구의 위판장에는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박봉환과 손달근이 수탉처럼 홰를 치고 있었다.

어선들이 조업을 나가기전에 이미 배떼기가 약속이된 듯 잡어를 제외한 새우 상자는 대개 두 사람이 몰아 사고 있었다. 난전꾼들이나 외지인들이 두 사람의 매점(買占)에 부아가 끓어 삿대질을 해댔지만, 코방귀조차 없었다.

방극섭도 구경꾼들 사이에 끼여 경매를 지켜보기만 하였다. 경매는 새우배들이 모두 포구로 돌아오는 오후 5시쯤에서야 마감되었다.

그러나 한물때와 비교하면, 수량은 보잘것이 없었다. 방극섭이 두 사람을 아는체한 것은 경매를 마감한 뒤였고, 서문식당 앞에 난데없는 차일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뒤늦은 다음이었다.

승희는 한동안 그 차일막 앞에 꼼짝않고 서 있었다. 새로 장만한 것이 틀림없는 차일막에는 '한씨네 난전' 이란 페인트로 쓴 글씨가 선명했다. 그 차일막을 보는 순간 승희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포구 근처 어디에도 한철규나 태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한씨네 행중에 간여했었던 대개의 사람들은 모두 포구에 당도해 있었다. 박봉환 내외, 그리고 손달근의 내외, 승희와 방극섭, 심지어 대전에서 왔다는 배완호까지 당도해 있었다.

경매에서 사들인 새우들은 모두 한씨네 차일막에 상자째 쌓였다. 분명 야시장을 열 심산이었다. 방극섭이가 몰고온 자동차의 적재함에서 북을 꺼내 둘러멘 것은 저녁 7시쯤이었다. 그가 구성지게 부른 것은 전혀 들어본적이 없었던 장타령 한마당이었다.

얼-씨구 씨구 두른다/ 저-얼씨구 둘러요/ 엎어졌다 어파장/ 자빠졌다 잡화장/ 앉아보니 안주장/ 누웠다고 누머리장/ 순박하다 순천장/ 영명하다 영유장/ 만학천봉에 만선장/ 고고천봉에 고읍장/ 좌우청룡에 자산장/ 정처없다 정주장/ 가련하다 가련장/ 한이 없어 한천장/ 둥글넙적 중교장/ 개편해서 개천장/ 운무중천에 운전장/ 기괴하다 기양장/ 허송세월 태평장/ 용이올라 용성장/ 황당하다 황주장/ 서쪽 강을 건너서니 여기 바로 강서장/용마났다 용강장/ 서남포구 남포장/ 원 풀었다 원암장/ 수양버들 수양장/ 이장저장 다버리고 매일보는 평양장/ 불원천리 달려 왔소-.

장타령 한마당을 뽑아올리던 방극섭의 장구채가 문득 하늘을 가리켰다. 웅기중기 모여든 구경꾼들의 시선이 장구채가 가리키는 쪽을 따라 허공을 헤매었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둥근 달이 중천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은 언제나 하늘 가운데 뜨고 지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이었다.

방극섭에게 쏠려있었던 시선들이 모두 달을 쳐다보고 있었을 때, 두 여자가 커다란 양동이 두 개를 들고 구경꾼들 앞에 나타났다. 손달근의 아내와 박봉환의 아내 희숙이었다. 어느새 승희도 두 여자들 사이에 스스럼없이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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