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방송법시대 이제 시작이다] 5.끝 허물어진 영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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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에서도 테드 터너의 타임워너나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 같은 미디어그룹이 생기게 될까. 통합방송법 통과로 한국 방송업계의 탈바꿈이 관심거리다. 지상파.케이블TV.위성방송 사이의 소유장벽이 부분적으로 허물어져 대형 미디어그룹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방송시장에선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동양그룹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최근 영화 케이블 채널인 캐치원과 OCN을 합병해 ON 미디어를 발족시켰다. 만화채널 투니버스와 바둑채널을 합쳐 4개의 케이블 채널을 갖게 됐다. 이달 말 확정되는 신규채널에도 게임채널을 신청한 상태다.

케이블 프로그램 공급사(PP)와 지역방송국(SO)의 합병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말엔 홈쇼핑 채널 39쇼핑이 서울 양천구의 SO를 인수했다. LG 홈쇼핑도 SO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O 합병도 활발하다. 조선무역과 대호건설은 각각 10개와 6개의 SO를 소유하며 지역방송국의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PP.SO의 겸영(兼營)을 허용한 통합방송법에 따라 케이블업계의 합종연횡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상파 방송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최근 SBS가 골프채널을 인수한 데 이어 방송3사는 저마다 별도조직을 가동하며 케이블.위성방송 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한 통신회사와 손잡고 인터넷 방송을 개시하는 등 뉴미디어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언론사.외국자본의 위성방송 진입도 방송계 판도를 바꿔놓을 변수다. 통합방송법에는 이들의 참여가 일정 수준(위성방송 사업 33%, 채널 사용사업 대기업.언론사 1백%.외국자본 33%)으로 제한됐지만, 향후 상업방송의 꼴이 갖춰지면서 이들의 지분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에선 지상파 방송사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상파가 뉴미디어 환경에서도 '초강자' 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풍부한 제작인력과 프로그램(콘텐츠)으로 무장한 지상파가 다른 영역도 제압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되는 생각도 만만찮다. 연세대 강상현 교수(신문방송학)는 "향후 2조원이 넘게 들어갈 디지털 방송 재원 마련 때문에 지상파가 케이블.위성방송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없다" 며 "전체 방송시장에서 지상파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 것" 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지상파.케이블.위성을 망라하는 대형 방송사가 탄생하면서 이들 3자의 차별화를 꾀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공익기능이 강한 지상파와 상업방송인 케이블.위성방송을 동일한 틀로 꾸려갈 수는 없기 때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국진 박사는 "지상파 공영방송은 지금보다 더욱 공공이익에 봉사하게 하고, 기타 민영방송은 매출.수익의 일정액을 공익프로 제작에 돌리도록 해야 하다" 고 지적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대형 방송사의 '독주' 를 막으려면 외국처럼 개별 사업자가 지상파.케이블.위성 등 전체 방송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청점유율을 제한해야(영국 15%, 독일 30%)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정회사의 점유율이 일정 한도를 넘으면 새로운 매체.채널 진입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 통합방송법에도 이 비율을 향후 마련될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해 놓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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