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간섭은 질색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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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영화 ‘싱글즈’의 한 장면.

"같은 집에 살다 부모님이 아시면 당장 결혼하라고 할 테니까요. 들키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 수 있는 '편법'인거죠."

김종명(가명.30).박현주(가명.여.31) 커플. 대학 1학년 때 부터 10년째 사귀어온 둘은 현재 '준동거' 상태다. 4년 전 1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각자 방을 얻어놓고 지내왔고, 2년 전엔 한 건물 위아래 층에 나란히 살았다. 올해부턴 대문 하나 지나면 각자 원룸으로 통하는 독특한 구조의 서울 한 대학가에 살고 있다. '두 지붕 한가족'이랄까.

각각의 방은 영역이 구분돼 있다. 대학원생인 김씨의 방이 '주거용'이라면 프리랜서 작가인 박씨의 방은 '사무용'으로 쓰인다. 박씨가 아침에 출근하고 나면 김씨가 박씨의 방에서 공부를 하고, 박씨가 퇴근한 다음 저녁엔 김씨의 원룸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박씨 방엔 책상과 컴퓨터 등이 놓여져 딱딱한 느낌이라면 16평짜리 김씨 방은 식탁과 TV, 퀸사이즈 침대 등 분위기도 아늑하다.

"4년 정도 준동거 생활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쌓인 거죠. '두집 살림'을 꾸미기 위해 칫솔.숟가락 등 생활용품을 각자 2개씩 장만하는 것도 낭비니 한곳으로 몰아둔 거고요."

부모님만 모를 뿐 둘의 준동거 생활은 가까운 친구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한다. 가끔씩 친구들을 불러 김씨 방에서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한다. 그렇다면 '준동거'생활의 편리한 점은?

"너무 가까이서 살 맞대고 살다보면 간섭도 많이 하고 짜증 섞인 다툼이 나기도 하잖아요. 형식적이지만 각자의 공간이 떨어진 만큼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하게 되더라고요."

그 덕분인지 둘은 준동거 생활 4년 동안 목청을 높인 적이 한번도 없단다.

결혼할 의사는 있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중요한 건 결혼이란 '제도'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하느냐는 둘의 '관계'가 아닐까요. 상대방 부모와 형제 등도 가족으로 함께할 마음이 들면 그때쯤 결혼을 하겠죠."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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